테오 주한 싱가포르 대사 인터뷰 “기업은 인재가 있는 곳에 투자 싱가포르 인구 41% 외국인이지만 더 많은 외국인 인재 영입하려 해”
에릭 테오 주한 싱가포르 대사가 최근 서울 성북구 주한 싱가포르대사관 관저에서 진행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모자를 쓴 모습으로 말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에릭 테오 주한 싱가포르대사(52)의 말이다. 그는 강대국에 둘러싸이고 천연자원이 빈약하다는 제약을 딛고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두 나라가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현재 직면한 사회·경제 이슈들이 많이 닮아있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싱가포르의 합계출산율은 각각 지난해 0.78명, 1.05명을 기록했다. 싱가포르는 세계 최초로 도입한 외국인 가사근로자 제도를 유지하는 한편 교육 개혁을 단행 중이다. 두 나라는 마약 청정국 지위를 지키고자 분투하고 있기도 하다.
테오 대사가 한국에 부임한 지는 벌써 5년째다. 최근에는 큰 수술을 겪기도 했다. 올 초 받은 건강검진에서 뇌에 지름 6cm 크기의 종양이 발견돼 4월 수술을 받은 것. 다행히 전이 능력이 없는 양성 종양이었다. 회복기를 거친 테오 대사는 “12일간 입원하면서 한국의 의료 시스템과 의사와 간호사들의 전문성을 존경하게 됐다”며 “한국 의사가 내 목숨을 살려줘 한국과 더욱더 가까워진 기분이 든다”며 웃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에릭 테오 주한 싱가포르대사가 최근 서울 성북구 주한 싱가포르대사관저에서 진행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모자를 쓴 모습으로 말하고 있다. 양회성기자 yohan@donga.com
“싱가포르 인구 564만 명 중 싱가포르인은 335만 명이다. 싱가포르에 외국인 229만 명이 산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싱가포르는 더 많은 외국인 인재를 데려오고자 한다. 싱가포르인들이 꺼리는 업종에도 외국인 근로자가 필요하고, 고숙련 싱가포르인이 수요에 비해 부족한 일부 업종에도 외국인 근로자가 필요하다.
물론 ‘싱가포르인의 일자리를 외국인이 빼앗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기업은 외국인이건 내국인이건 좋은 인재가 있는 곳에 투자한다. 기업들이 싱가포르에 더 많이 투자하면 경제 규모가 커지고 궁극적으로 싱가포르인에게 좋은 일자리도 늘어난다.”
―한국은 여전히 단일 문화권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싱가포르에서 서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배경이 무엇인가.
“싱가포르는 이민자들의 국가다. 예컨대 나는 이민 3세대다. 친할아버지가 중국 광둥성을 떠나 싱가포르에서 가정을 꾸렸다. 싱가포르 국민 4명 중 3명은 나처럼 중국계 싱가포르인이다. 말레이계 싱가포르인이 15%, 인도계 싱가포르인이 8%다.
역사가 수천 년에 이르는 한국과 달리 싱가포르는 올해 독립 58주년을 맞은 젊은 국가다. ‘싱가포르인’으로 함께 산 기간이 짧다고 느낄 수 있지만 다문화 사회를 이룩했다. 다른 민족과 종교에 대한 사회적 존중이 자리 잡았다. 우리는 문화적 배경에 상관없이 같은 동네에 산다. 예컨대 이슬람교 모스크 옆에 불교 사원이 있는 일이 흔하다. 최근에는 싱가포르에 사는 한국인 수도 크게 늘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매일 보고 어울려 살다 보면 다른 문화권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자연스럽게 생긴다.
정부는 이 같은 ‘소셜 믹스’ 정책을 적극 추진해 왔다. 이면에는 다른 문화, 민족, 종교에 대한 비방과 폭력 조장을 금지하는 강한 법 체계가 떠받치고 있기도 하다. 종교, 인종 등으로 충돌하면 순식간에 사태가 통제 범위를 넘어설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싱가포르도 한국도 교육열이 강하다. 한국에서는 지나친 교육열이 저출생의 배경으로 꼽히기도 한다. 싱가포르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교육 개혁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8년부터 6년째 추진 중인 ‘인생을 위한 배움(Learn for Life)’ 정책의 일환으로 올해부터 전국 초등·중학교(만 7~16세)에서 ‘5월 시험’을 중단한다. 싱가포르는 기존에 모든 학년에서 5, 11월경 연간 두 차례 정기 시험을 치렀지만 이제는 체험학습을 늘리고, 외국어 학습과 해외 교환학생 제도도 강화해 학생들이 자신의 관심사와 강점을 발견하게 돕고자 한다.”
―한국에서는 ‘외국인 가사관리자’(국내 공식 명칭) 시범 도입이 이슈다. 싱가포르는 일찍이 외국인 가사근로자들이 들어와 일하고 있다. 어떻게 사회에 정착했는가.
“싱가포르는 1978년부터 외국인 가사근로자 제도를 도입했다. 현재 필리핀, 인도네시아, 미얀마, 스리랑카 등에서 온 가사근로자 27만 명이 싱가포르에서 일하고 있다.
가사근로자들은 본국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한국에서 최저임금 적용을 두고 논쟁이 있는 것으로 안다. 만일 최저임금을 적용한다면 외국인 가사근로자를 고용할 여력이 되는 가정이 적어질 수도 있다. 한국 사회가 합의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점은 싱가포르 정부가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외국인 가사근로자의 인권을 강력하게 관리한다는 것이다. 가사근로자에 대한 고용주의 학대가 벌어지면 고용주를 엄벌한다. 외국인 근로자가 싱가포르에서 안심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다는 점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다.
외국인 가사근로자가 있어 경력 단절되는 여성이 적다. 현재 일터에서는 근로자의 절반 가까이가 여성이다. 하지만 싱가포르 사회는 이 제도만으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육아와 가사를 가정 내 분담해야 한다. 근무 형태도 보다 유연해져야 하고 보육센터도 더 많이 필요하다.”
―싱가포르는 마약사범에 사형을 집행한다. 엄벌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싱가포르는 마약 밀수를 살인, 납치에 버금가는 3대 중대범죄로 취급한다. 마약 공급자는 적발 시 최대 사형까지도 처벌을 받는다. 이는 마약 유입을 막기 위해서다. 목숨 걸고 싱가포르에 마약을 들여오겠는가.
해외 국가들에서 법이 엄격하다는 비판도 받는다. 그러나 사형 집행을 포함한 국내법에 따른 조치는 주권의 영역이다. 국가별로 상황에 맞춰 법제도를 운영하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마약에 관대한 국가가 되고 싶지 않다. 마약 밀수는 공급책이 들여온 마약으로 한 가정 구성원 모두의 인생을 파괴하고야 말기 때문에 엄중하게 다뤄야 한다.
그러나 마약을 사용한 ‘마약 남용자’들에게는 다르게 접근한다. 처벌보다 재활에 무게를 둔다. 이들을 재활원에 보내고 재범을 막기 위해 추적 관리한다. 싱가포르는 두 번째 기회를 주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재활을 마친 남용자들이 생업을 구하지 못하면 다시 마약을 찾아 중독에 빠질 수도 있다. 그래서 기업들이 마약사범에게 기회를 주며 동참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싱가포르 정부가 마약에 이같이 대처하는 이유는 결국엔 일하기에도 살기에도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