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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속 바위산 닮은 건물 한 채

입력 | 2023-08-09 03:00:00

대림동 ‘로스톤’ 설계한 건축가 정의엽
바위 모양 기둥들이 천장 받치는 모습
“자연과 인간 사이 단절 극복을 표현”




올해 5월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지어진 건물 ‘로스톤’. 바위를 형상화한 콘크리트 기둥 48개가 건물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모양새다. ⓒ신경섭, 에이엔디건축사사무소 제공

‘서울의 차이나타운’으로 불리기도 하는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은 훠궈 등 중국 현지 음식 가게 등이 유명하지만 안쪽 노후주택가는 대체로 ‘가보고 싶은 동네’에 꼽히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올해 5월 깎아지른 듯한 바위산을 닮은 건물 한 채가 들어서며 동네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하 1층, 지상 6층 규모인 이 건물의 이름은 ‘로스트 스톤(Lost Stone)’을 줄인 ‘로스톤’. 너비와 생김새가 다른 콘크리트 소재 바위 기둥 48개가 고인돌처럼 층층이 천장을 받치고 있는 이색적인 모양새다. 1∼3층은 카페로, 4층은 갤러리로 운영 중인 이 건물을 보려고 최근 이 동네를 찾는 20, 30대가 적지 않다. 소셜미디어 등에는 “대림동에 이런 현대적인 건물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는 방문객들의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7일 오후 이 건물 카페에선 손님들이 굴곡진 콘크리트 바위에 기대앉은 채 창밖 동네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건물을 디자인한 정의엽 에이엔디건축사사무소 대표(47·사진)는 기자와 만나 “이곳을 찾은 이들이 바위로 둘러싸인 산 속에 들어온 것처럼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 대표는 경기 파주시의 카페 ‘루버월’로 2016년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전남 여수시 상가주택 ‘웨이브월’로 2018년 대한민국 신진건축사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정 대표가 처음 ‘로스톤’의 이미지를 떠올린 건 2020년 10월. 제주 가파도를 여행할 때였다. 그는 “제주 바다의 수평선과 사람이 발 딛고 설 수 있는 땅 사이에 솟아오른 바위를 보며 내가 자연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연결돼 있는 일부임을 깨달았다”며 “자연과 인간 사이의 단절을 극복할 수 있는 매개로 바위를 떠올리게 됐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의 스케치북엔 바위에 기대거나 누워 쉬는 사람, 층층이 쌓아올린 바위 건축물의 이미지가 쌓였다.

이미지가 실현된 건 지난해 초 대림동 노후주택을 물려받은 40대 건축주를 만나면서다. 건축주는 “할아버지의 오래된 집처럼 오랫동안 이 동네에서 버틸 수 있는 건축물을 짓고 싶다”고 했다. 정 대표의 머릿속엔 바위산의 이미지가 떠올랐다고 한다.

바위를 형상화한 콘크리트 기둥들 사이엔 전면 창을 내 안팎의 시선이 단절되지 않고 통하도록 설계했다. 정 대표는 “이 건축물이 ‘차이나타운’이라는 동네의 경계를 허물고 많은 이들이 드나드는 문화공간이 되길 바랐다”고 했다.

최근엔 일본인 관광객으로부터 “서울을 여행하다가 이 건축물을 보기 위해 대림동을 처음 와 봤다”는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로스톤 안에서 여러 언어가 뒤섞이는 모습을 상상해 봤어요. 앞으로도 이 동네를 찾는 이들이 더욱 많아지길 바랍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