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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부동산시장 침체 늪…7월 분양단지 절반 미달

입력 | 2023-08-09 03:00:00

[리스크 커지는 지방 부동산]
악성 미분양 증가… 신규사업 올스톱




울산에서 지난달 분양한 ‘유보라신천매곡’ 아파트. 일반분양 물량으로 348채가 나왔는데 1순위 청약에 14명만 신청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등을 통근할 수 있는 신흥 주거타운에 있는 데다 도보 10분 거리에 초중고교가 있어 실수요자가 몰릴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만 결국 흥행에 실패했다. 광주에서 비슷한 시기에 분양한 ‘PH543’도 지역 내 하이엔드 아파트로 관심을 모았지만 99채 모집에 단 2명만 청약을 넣었다. 이달 4일 서울 광진구 ‘롯데캐슬 이스트폴’ 420채 모집에 4만1344명이 몰리며 평균 경쟁률이 100 대 1에 육박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부동산 경기가 다시 살아나는 수도권과 달리 지방 부동산은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청약시장 부진으로 신규 개발 사업이 ‘올스톱’ 되고 악성 미분양도 늘면서 지방 경기 악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8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6월 지방 5대 광역시(부산 대구 광주 울산 대전)를 통틀어 착공된 민간분양 주택이 910채로, 직전 5년간(2018∼2022년) 6월 착공 물량(평균 8845채)의 10.3%에 그친다.

올해 2분기(4∼6월) 서울, 인천, 경기를 제외한 지방 전체 착공 물량은 2만439채로 최근 5년 평균(5만4706채)의 3분의 1 수준이다. 2분기는 겨울철 건설 휴지기를 마치고 본격적인 착공이 늘어나는 시기지만 착공 물량이 급감한 것이다.

건설사들이 ‘개점휴업’ 상태로 공사를 멈춘 것은 지방 청약시장 부진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영향이 크다. 7월 지방에서 분양한 13개 단지 중 절반에 가까운 6개 단지가 미달됐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방 건설시장은 하도급 업체와 건설인력 등을 고용해 지역 경기를 떠받치는 역할을 하는데, 이대로라면 경제 전반에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PF자금까지 확보했지만… 시공 맡을 건설사 없어 착공 연기



청약 미달 속출에 건설사들 난색
‘준공후 미분양’ 반년새 20% 증가
규제 완화되며 수도권 투자 몰려
“이대로면 경제전반 리스크 될것”


경남 거제시에서 올해 하반기(7∼12월) 착공 예정이었던 아파트 단지. 총사업비 2000억 원 규모로 자금 조달이 어려운 와중에도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위한 금융사 협의까지 마쳐놓고, 시행 사업에서 난관으로 꼽히는 인허가도 받아놨다. 하지만 최근 사업이 내년으로 연기됐다. 금융사가 대출을 내주는 조건으로 대기업 건설사(1군 건설사)의 ‘책임준공 확약’을 요구했지만 짓겠다고 한 건설사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책임준공 확약은 공사비를 받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도 자체 자금으로 정해진 시기까지 완공하겠다는 약속이다.

시행사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땐 책임준공 확약을 일사천리로 받았는데, 이번에는 접촉했던 1군 건설사 4, 5곳이 모두 난색을 표했다”며 “지방 부동산 침체가 장기화하고 미분양이 속출하는 단지가 많다 보니 인허가를 마치고도 착공을 못 하는 사업장이 수두룩하다”고 전했다.


● ‘미달’ 단지 속출하는 지방

8일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에서 공급된 일반분양 물량 9872채에 9만2329채의 1순위 청약통장이 접수되며 평균 9.4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다만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는 컸다. 수도권에서 공급된 9개 단지 중 일반물량보다 1순위 청약자 수가 적어 미달된 곳은 1곳에 그쳤다. 반면 그 외 지역은 13개 단지 중 6개 단지에서 1순위 경쟁률이 1 대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청약 미달을 피한 단지도 부산 청약 최대어로 꼽혔던 ‘대연 디아이엘’(1순위 경쟁률 15.6 대 1), 강원 춘천시 ‘춘천레이크시티아이파크’(27.8 대 1), 전북 전주시 ‘에코시티한양수자인디에스틴’(85.4 대 1) 등을 빼면 평균 경쟁률이 3∼4 대 1 수준이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당장 지난달 서울에서 분양한 5개 단지의 1순위 경쟁률 평균이 100 대 1을 넘는 것과 비교하면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악성 미분양’으로 꼽히는 준공 후 미분양 물량도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지방의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7407채로 지난해 말(6226채)과 비교하면 반년 새 20% 가까이 증가했다. 일반 미분양은 감소세지만 건설사들이 아예 분양 자체를 하지 않는 영향이 크다.


● 아파트값 하락에 공급 과잉 우려까지

아파트값 부진도 계속되고 있다. 수도권은 올해 6월 아파트 매매가격지수가 전달 대비 0.1% 오르면서 1년 7개월 만에 반등했다. 반면 지방은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된 하락세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양극화는 정부의 대대적인 부동산 규제 완화로 투자 수요가 서울 등 수도권에 쏠리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올해 1∼6월 서울 아파트 외지인 매입 비중은 26.1%에 이른다. 이 시기에 팔린 서울 아파트 4건 중 1건 이상을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 거주자가 ‘원정 매입’한 셈. 이는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6년 이후 동기 기준 역대 최대 수준이다.

지방은 공급 과잉 우려까지 겹쳤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7월부터 내년 6월까지 지방(광역시 포함) 아파트 입주 물량은 19만3299채로 전망된다. 직전 1년(지난해 7월∼올해 6월) 입주 물량(15만6057채)보다 23.9% 많다. 이 기간 수도권 아파트 입주 물량은 20만5296채에서 17만548채로 16.9% 감소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대로라면 부동산 PF 대출 부실로 연체율이 급등하며 ‘위기설’까지 나돈 새마을금고와 같은 사례가 지역 경제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한다. 전방위적 규제 완화로 시중 자금이 수도권 부동산으로 쏠리면서 한동안 지방 부동산 경기가 반전될 요인도 마땅치 않은 상태다.

우병탁 신한은행 압구정역기업금융센터 부지점장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나 분양권 단기 양도 시 세율 완화 등의 인위적인 부양책이 없다면 지방 부동산 침체는 길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정부가 수도권 위주의 부동산 시장 안정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경제 전반의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지방 부동산 시장을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