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근 경찰청장이 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 청장은 “흉기 난동을 예방하려면 ‘경찰 면책권’ 등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윤희근 경찰청장(55·사진)이 4일 동아일보와의 취임 1년 인터뷰에서 최근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이어지고 있는 흉기난동 사건과 ‘살인 예고’ 글에 대해 “국민도 (공권력에 대한) 시각을 바꿔 주길 호소한다”며 이렇게 밝혔다. 불특정 다수를 노린 범죄를 막으려면 일선 경찰들의 적극적인 공권력 집행이 어떻게 보장돼야 하는지 처음으로 언급한 것이다.
인터뷰에서 윤 청장은 “그간 공권력을 집행하다 경찰관이 민형사상 책임을 진 사례가 10건 정도인데, 그렇게 처벌하면서 과감하게 공권력을 집행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는 건 이율배반적”이라고 강조했다. 현 정부 들어 집회·시위 대응이 강경해졌다는 지적에 대해선 “집회·시위의 자유는 국격을 따라가야 한다. ‘민폐의 자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공권력에 대한 국민 시각 바꿔주셔야”
―연이은 흉기 난동과 살인 예고 글로 국민 불안감이 크다.“칼부림 사건이 발생한 장소가 신림역과 서현역이다. 다중이 운집할 수 있는 공공장소에서 발생한 것이다. 복합 환승역, 백화점 등 247곳에 인력을 집중 투입해 (유사 범죄에) 대비하고 있다.”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흉기 난동 시 총기 사용도 주저하지 말라는 지시에 대한 우려가 많다.
“총기 사용은 그야말로 최후의 수단이고 나름의 조건과 매뉴얼이 있다. 다만 지금처럼 흉기 난동이 빈번해진 상황이라면 정부 차원에서 위험 상황 발생 시 총기를 ‘주저 없이 사용해라’라고 말해야 한다. 총기 사용이 고의가 아닌 상황에 대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뒷받침해 주겠다. 검문검색도 사실상 사문화되면서 일선 경찰들도 부담을 느끼지만, 최근 사회 분위기를 반전하기 위해 내린 특단의 조치다.”
―흉기 난동과 살인 예고에 대해 ‘특별치안 조치’를 진행하고 있는데….
“국민 불안이 해소돼 일상적인 치안 체계로 돌아가도 된다고 판단할 때까지 지속할 생각이다. 지금은 지구대 파출소 직원들의 업무가 112 신고 대응에 집중돼 있는데 앞으로 예방 활동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는 치안 패러다임 전환까지 이뤄내려고 한다.”
―일선 경찰들은 공권력을 강하게 집행했다가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을 우려하는데….
“공권력 집행에 대한 면책 규정이 미비하다. 과거에 소위 ‘과도한 공권력 집행’이라고 해서 민사 또는 형사적으로 경찰관이 책임을 졌던 사례가 10건 정도 있다.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현장 경찰관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경찰청장으로서 국민께서 시각을 바꿔 달라고 호소하고자 한다. 그렇게 처벌해 놓고서 ‘국민이 위험에 처해 있는데 왜 너희들 나와서 당당하게 총 못 쓰느냐’ 질책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앞으로 경찰도 총기, 테이저건 등 물리력 훈련을 충분히 하겠다.”
●“민폐의 자유는 없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 당시 ‘허위 출동’ 의혹이 일면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국무조정실과 검찰이 지금까지도 경찰만 책임이 있다고 몰았다면 입장 표명을 했을 것이다. 초기 경찰의 잘못이 부각된 아쉬움이 있지만 지금은 수사가 나름 공정하게 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 허위 출동·보고도 (사실이) 아니라고 본다. 현장 경찰관을 신뢰한다. (검찰) 수사로 결과가 나올 것이다.”
―대통령실이 집시법 개정을 권고하는 등 엄격한 집회 시위 관리를 강조하고 있다.
“37년간 경찰 제복을 입고 있는 제 소신이 ‘민폐의 자유는 없다’는 것이다. 집회 시위도 국격에 맞게 가야 한다. 과거 불법 폭력 집회가 불법 평화 집회로 바뀌었는데, 이제는 평화적이어도 불법 집회는 안 된다고 국민이 보고 있다. 경찰이 대통령실에 코드를 맞추고 있다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법무부의 수사 준칙 개정안에 대해 일각에서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래대로 복귀)’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렇게 보지 않는다. ‘하해불택세류(큰 바다는 작은 냇물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인다)’라는 말도 있지 않나. 큰 물줄기는 바뀌지 않는다. 수사와 기소 분리가 궁극적 방향이고 경찰이 검찰의 지휘를 받지 않는 큰 물줄기는 안 바뀐다. 다만 일부 완비되지 않은 세부 사항에 대한 미세조정은 받아들일 수 있다.”
―내년 총선에 출마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제가 왜 그런 방향으로 자꾸 거명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저는 지금 제가 스무살 적 생각하던 가장 영예로운 자리에 와 있다. 이제 임기가 절반 왔다. 앞으로 하고 싶은 게 많다.”
“경찰청장이 차관급이라는 점 때문에 조직원 사기가 좀 낮다. 우리의 규모와 역량과 책임에 걸맞은 그런 대우(장관급)를 해줬으면 하는 게 내 꿈이다. 전국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장은 1급이다 보니 외부에서 우수한 인재를 데리고 오지 못한다. 최소한 국가수사본부장은 차관급으로 격상해 줬으면 한다.”
송유근기자 bi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