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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에 자리 내준 공교육… 교사·학교 권위 실추 불렀다[광화문에서/김현지]

입력 | 2023-08-09 23:42:00

김현지 미래전략연구소 사업전략팀장


큰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때까지 학원에 거의 보내지 않았다. 공부는 내재적 학습 동기가 가장 중요하며 부모의 조바심에 학원으로 아이 등을 떠밀다 보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책을 읽거나 친구들과 노는 것이 아이의 주요 일상이었다.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영어 실력이 많이 뒤처진다”는 직격탄을 맞기 전까지 얘기다.

정기 상담에서 선생님은 “보통 다른 아이들은 학원에서 문법과 말하기를 배워 온다”며 어느 정도 수준을 맞추지 않으면 아이가 학교 수업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일기 쓰기나 문제 풀이 숙제 좀 내달라는 나의 주문에 “학원 숙제가 너무 많아 학교에서까지 내주기 힘들다”고 했다. 아이를 학원에 안 보내고 뭐 하느냐는 말로 들렸다.

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 이후 학부모가 교사를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교사와 학교의 권위가 실추된 데는 공교육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현실에도 원인이 있음을 짚지 않을 수 없다. 공교육의 자리를 사교육에 무기력하게 내어준 탓은 아닌지.

입시 지향적 교육 수요를 촘촘하게 파고든 사교육의 효율을 공교육은 따라가기 힘들다. 하지만 사교육은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이지 교육의 목표가 될 수 없다. 수많은 10대가 사회에 발을 디디기도 전에 자신을 ‘패배자’로 인식하는 폐해를 사교육은 해결하지 못한다. 오히려 ‘나도 패배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커져야 돈 버는 곳이 사교육 시장이다.

무엇보다 사교육은 미래 사회 적응에 필요한 자질을 가르치기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 지금의 10대가 직장을 구해야 할 시기엔 인간이 하던 많은 일을 인공지능과 로봇이 하고 있을 것이다. 10대는 기계와 경쟁해 이길 능력을 갖춰야 한다. 창의적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다른 이와 협업하는 능력과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창의력이나 협업 능력은 높고 낮은 정도를 수치화하기 힘들다. 시간과 돈을 투입한다 해도 교육 효과가 빨리 나오지 않는다. 여기에는 사교육이 들어갈 틈이 없다. 공교육만이 수행할 수 있는 영역인 것이다.

더군다나 정보기술(IT)의 급격한 발전으로 미래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사교육이 해오던 방식대로 물고기를 어디서 어떻게 잡으면 되는지 구체적 지침을 주는 일이 미래 세대에 도움이 될지 역시 의문이다.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스스로 알아내 직접 해결하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일이 더 시급하지 않을까. 이처럼 지식보다 태도를 가르치는 것 역시 공교육이 더 잘할 수 있다.

현재 교권 실추 해결을 위해 거론되는 대책들은 기술적 차원에 그친다는 인상을 준다. 교사 면담 사전예약제, 아동학대 관련 법률 개정 등 ‘방지’ ‘보호’ ‘처벌 강화’를 강조한 방어적 키워드로는 교권 실추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 힘들다.

학부모 민원에 지쳐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지금, 특목고 입학에 실패한 은둔형 외톨이가 묻지 마 범죄자로 전락하는 지금, 인공지능 시대의 물결이 몰려오는 지금이 교육의 큰 그림을 그려줄 학교와 교사가 가장 절실한 때다.



김현지 미래전략연구소 사업전략팀장 n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