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정물화로 유명한 폴 세잔은 1870년대 중반부터 야외에서 수영하거나 목욕하는 사람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목욕하는 사람’(1885년·사진)도 그중 하나다. 한여름 대낮, 속옷만 입은 소년이 얕은 물웅덩이에 발을 담그고 있다. 그는 더위를 식혀줄 물속에서 오히려 의기소침해 보인다. 화가는 소년을 왜 이런 모습으로 그린 걸까?
사실 이 그림은 19세기 전통 미술 관점에서 보면 엉망진창이다. 젊은 남성을 그릴 때, 근육질 몸매와 이상적인 비율을 강조하던 관습을 완전히 깬다. 소년은 두 손을 엉덩이에 얹고 눈을 내리깐 채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입과 턱은 비틀어졌고, 몸에는 근육은커녕 생기도 없다. 비율도 맞지 않아 전혀 영웅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표정 때문에 오히려 우울하고 불안해 보인다. 푸른 배경은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세부 묘사가 생략돼 있어 강인지 바닷가인지, 현실인지 상상의 세계인지 알 수가 없다. 이는 전통 미술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추구하던 세잔의 예술관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고, 자신이 처한 모호한 상황을 투영한 것이기도 하다.
1885년은 세잔에게 위기와 도전의 해였다. 당시 세잔은 자신의 아들을 낳아 준 마리오르텐스라는 여성을 두고도 어린 가정부와 사랑에 빠졌다. 이를 안 누이가 가정부를 해고하는 바람에 낙담한 상태였다. 46세가 되도록 화가로 성공하지도 못했고, 경제적으로 독립하지도 못해 권위적인 아버지에게 여전히 의존하는 신세였다. 그럼에도 세잔은 첨단 기술이었던 사진을 활용해 시대를 앞선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다른 인상파 화가들처럼 야외에서 그리지 않고 자신의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한 모델의 사진을 찍어 그것을 보고 그렸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