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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 민원과의 전쟁’ 나선 서울 지자체

입력 | 2023-08-10 03:00:00

욕설-성희롱 땐 보디캠 작동
사전 고지 후 녹화-녹음 가능
서울시, 힐링 프로그램 운영하고
양천구는 방호 전담 직원 배치도



서울 송파구가 지난달 민원 담당 부서 중심으로 보급한 초소형 보디캠. 송파구 제공


서울 송파구 민원 관련 부서에서 근무하는 3년 차 공무원 A 씨는 최근 악성 민원에 진땀을 뺐다. 서류가 미비해 “보완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민원인이 고함을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민원인은 직인란에 해당 기관의 관리사무소 정식 직인 대신 자신의 사인을 적으며 “구청에 다시 오기 싫으니 지금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계속되는 소란에 A 씨는 매뉴얼대로 보디캠을 착용하고 “지금부터 녹음을 시작하겠다”고 고지했다. 그러자 민원인은 욕설을 내뱉으며 금방 자리를 떴다. A 씨는 “보디캠이 없었을 때는 민원인이 더 오래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많았다”며 “구청 권한이 아닌 일을 처리해 달라고 요청받는 경우가 많아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 ‘악성 민원’ 대비 보디캠 속속 도입

악성 민원이 점차 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18년 3만4484건이었던 민원인 위법 행위는 2021년 5만1883건으로 3년 만에 50.5% 증가했다.

이에 서울 자치구들이 보디캠 등 악성 민원에 골머리를 앓는 공무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송파구는 지난달부터 구청 교통민원실, 세무민원실 등 민원 담당 부서에 초소형 보디캠 30대를 보급했다. 관악구, 금천구 등도 대민 부서를 중심으로 휴대용 보디캠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지난해 7월 개정된 민원처리법 시행령이 4월부터 시행되면서 시작됐다. 개정안에 따르면 각 지방자치단체는 민원인의 위법 행위에 대한 법적 대응 업무를 총괄하는 전담 부서를 의무적으로 지정해야 한다. 악성 민원인에게 영상 촬영 장비를 사용할 수도 있게 됐다. 특히 서울시는 ‘민원처리 담당자 휴대용 보호장비 운영지침’을 통해 민원인의 욕설, 협박, 성희롱 등이 있는 경우 사전 고지 후 녹화·녹음을 가능하게 했다.

양천구는 4월부터 민원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해 악성 민원 발생이 많은 신월동 3개동 주민센터에 방호 전담 직원을 배치했다. 지난해 6월 신월동 주민센터에서 주취 상태 민원인이 쇠망치를 들고 폭언 및 자해하는 일이 벌어지자 경호를 강화한 것이다. 양천구 관계자는 “수급자 신청 업무 등 민원 일선에 있는 공무원들의 불안감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 스트레스 관리 강의 등 ‘힐링 프로그램’도

민원에 지친 공무원들을 위로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서울시는 올해 교통, 주택, 환경 등 민원 처리가 많은 격무 부서 공무원 140명에게 ‘힐링데이’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한 2020년부터 만들어진 이 프로그램은 전문 강사의 스트레스 관리 교육과 공연장 방문, 원데이클래스 등이 진행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녹음·녹화가 가능해졌지만 고질적 민원은 계속되고 있다. 프로그램을 통해 스트레스를 줄였다는 직원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서초구는 지난달 리모델링한 OK민원센터 민원여권과 한쪽에 민원 공무원을 위한 전용 공간 ‘아담소(我談所)’를 만들었다. 2평 남짓한 방에 지친 이들이 마음을 달랠 수 있도록 차와 커피포트, 휴지통 등을 구비했다. 서초구 관계자는 “사무실 안에서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울 때 이곳을 찾는 공무원들이 많다”고 전했다.

다만 지자체 차원의 대책이 근본적 처방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서울시의 한 민원 담당 공무원은 “보디캠이나 힐링 프로그램 모두 이미 민원인의 위법행위가 발생한 뒤 사후적으로 대처하는 방안”이라며 “악성 민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예방책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