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원 TOP 100 차트인, TV 화제성 순위…. 매일 같이 쏟아지는 기사 제목입니다. 시선에서 자유로울 것 같은 예술계도 성공의 기준은 꽤 명확한 편입니다. 그럼 당장 순위권에 없는 이들은 어떨까요? ‘차트 밖 K문화’는 알려졌지만 알려지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연재물입니다. 유치할지라도 대놓고 진지하게, 이 시대 예술가들의 철학을 소개합니다.
밴드 아디오스 오디오. 왼쪽부터 키보드의 호재, 보컬·기타의 호정, 드럼의 준현이다. 본인 제공
“저 사실 토하고 왔어요.”
드러머 준현(35)이 말했다.
“전 사실 한 시간도 못 잤어요.”
보컬 호정(38)이 말했다.
4일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2023’에서 공연하는 아디오스 오디오. 펜타포트 제공
꼭 펜타포트여서 격양됐던 건 아니었다. 이 밴드의 체질이 그렇다. 밴드의 이름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 작별을 뜻하는 스페인어 ‘Adios’와 녹음이란 뜻을 가진 영어 ‘Audio’. 합치면 “안녕, 오디오”다. 이는 음원을 통해서가 아니라 라이브 공연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나겠다는 밴드의 바람을 상징한다. 그만큼 이들은 무대를 갈망한다.
호정은 무대에 오르는 순간 생각한다. “지금부터 여긴 우리 구역”이라고. 준현은 드럼 스틱을 잡으며 생각한다. “이 무대가 마지막일 수 있다”고. 대부분의 뮤지션이 최선을 다하겠지만, 이들은 이름을 내건 만큼 조금 더 열정적이다. “무대가 끝난 후 기어 나오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라고 말할 정도. 그래서인지 이들은 페스티벌 무대도, 연합공연도 아디오스 오디오의 단독 공연처럼 느낀다고 했다.
아디오스 오디오는 펜타포트 무대를 위해 처음으로 음향팀 크루(VJ마채, 허정욱 음향감독, 한재영 음향감독, 김지수 포토그래퍼, 백종길 테크니션)를 만들었다. 이들은 이후 무대에도 함께 할 예정이다. 펜타포트 제공
에너지를 보여 드리고 싶어요. 그게 가능한 건 라이브밖에 없어요. 아무리 음원이 좋아도 그건 정제되어 있잖아요. 이 마음을, 이 음악을 위해 쏟은 저희의 감정을 전달하고 싶어요.
아디오스 오디오는 자신들의 음악을 ‘감성적인 음악’이 아닌 ‘감정적인 음악’으로 규정한다. 우선 본인들이 감정에 충실하다. 이들 모두 무대에 섰을 때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노래에 빨리 스며들어 내면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실제 호정은 노래하고 녹음하며 자주 운다. 곡마다 사연이 있어서다.●데뷔곡-밤밤밤
“가난하고 누추했던 날이에요. 새벽에 술을 마시면서 웃던 중이었어요. 문득 이 밤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더라고요. ‘아, 나 행복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누군가들도 이 밤을 행복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더라고요. 그렇게 시작된 곡이에요.”
●인기곡-끝없이 우리는
“과부하가 걸렸을 때였어요. 업무가 아닌 일로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호재와 제주도 항공권을 끊었어요. 그런데 지하철 안에서 일을 하다가 비행기를 놓친 거예요. 돌아오는 길에 둘이서 엄청 울었어요. 뒤돌아 그때 생각을 해보니 ‘속상했던 일이 있어서 지금이 더 신나고 행복하구나’, ‘청춘이 쌓여가는 게 이런 거구나’ 싶더라고요.”
●최신곡-핑
“작년까지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심했어요. 위험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이런 기분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았어요.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니 ‘이 노래를 듣고 같이 감정을 토해냈으면 좋겠다’, ‘박박 긁어서 쏟아졌으면 좋겠다’하는 마음으로 썼던 곡이에요.”
이런 호정의 감정을, 호재와 준현도 느낀다. 준현은 올 4월부터 팀에 합류한 새 멤버지만 “벌써 10년은 같이 한 사이 같다”고 말할 정도로 금세 동화됐다. 합류를 제안받을 당시의 식사 자리를 떠올리며 “제육볶음이 이렇게 무섭다”며 장난치면서도 “팀 활동을 하며 많이 밝아졌다”고 말한다. 오랜 시간 호정과 함께해온 호재는 두말할 것 없다. 이들은 그리 모인 셋의 에너지가 관객에게 가닿길 바란다. 호정은 감정선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해 가사를 쓸 때 한글을 고집하고 있기도 하다.
무대가 끝나갈 즈음, 아디오스 오디오가 건네는 말이 있다.
“살다가 조금은 지치는 날들이 있겠죠? 그때 오늘의 이 뜨거운 기억들이 생각나서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해요.”
이 말은 관객을 향한 말이면서 동시에 밴드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호정은 혼자가 싫어 밴드를 시작했다. 그래서 듣는 이들도 혼자가 아니었으면 한다. “음원은 혼자 듣는 경우가 많으니, 라이브 무대를 경험하면서 친구들을 만나 함께 공감하고 위로하셨으면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밴드와 관객은 오늘을, 또 서로를 떠올리며 이렇게 추억하지 않을까.
“아 진짜 뜨거웠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