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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이야기로 배우는 쉬운 경제]물가 오를 때 실업률은 하락… 금리로 조절할 수 있어요

입력 | 2023-08-11 03:00:00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은 반비례
실업자 많은 불경기엔 물가 낮고… 일자리 많아지면 물가는 높아져
기준금리 인상해 물가 안정되면… 대출-소비 위축되며 경기 침체




달성하고 싶은 목표 두 가지가 눈앞에 있는 경우를 ‘두 마리의 토끼’에 비유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욕심을 버리고 냉정하게 한 마리만 잡는 데 전력투구해야 합니다. 과욕을 부려 두 마리 모두 잡겠다고 무리하게 덤비면 한 마리도 잡지 못하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상상 속에서는 ‘돌멩이 하나로 새 두 마리를 잡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기적 같은 해법이 있을 것만 같은데 말입니다.


● 경제의 두 마리 토끼, 성장과 안정

경제에서 대표적인 두 마리의 토끼는 ‘경제 성장’과 ‘물가 안정’입니다. 경제 성장은 국내총생산(GDP)이 증가하는 것으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생산 활동이 이전보다 활발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경제 성장은 왕성한 생산 활동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생깁니다.

물가 안정은 물가가 크게 오르는 것(인플레이션)을 방지하는 것입니다. 수요 공급 변화에 따라 어느 한 상품의 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가는 시장의 원리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국가 경제 전반에 걸쳐 모든 가격들, 즉 전반적인 물가 수준이 오른다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이는 국가가 발행하고 관리하는 화폐 즉, 통화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물가 상승이 극심하고 그 정도가 선을 넘게 되면 한국은행이 발행한 원화가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의 재산이 물거품이 된다는 뜻입니다. 요약하자면 물가 안정은 통화 가치의 안정이면서 동시에 ‘국민이 번 돈을 지켜주는 것’입니다.



● 실업률 낮추려면 물가 상승 감수해야


경제 성장과 물가 안정이라는 두 목표는 얼핏 보면 동시에 달성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둘의 ‘두 마리 토끼’ 같은 관계가 밝혀진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1958년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필립스(A W Phillips)는 1861년부터 1957년까지 영국의 경제지표를 분석하고,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이 반비례 관계에 있음을 밝히는 논문을 발표합니다. 실업자가 많은 불경기에는 물가가 낮고, 실업자가 적은 호황기에는 물가가 높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실업률은 경제 성장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이고 물가상승률은 물가 안정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에 이 둘의 관계는 경제 성장과 물가 안정의 관계를 대변해 주고 있는 겁니다.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의 반비례 관계는 그림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이를 간략하게 도식화한 것을 ‘필립스 곡선’이라고 부릅니다.

필립스 곡선은 경제 정책과 관련해 수학 공식과 같이 명료한 해법이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해 줍니다. 경기 활성화를 통해 실업률을 낮추고 싶다면 물가 상승을 감수하면 되고, 반대로 물가 상승을 잡으려면 실업률 상승, 즉 일자리가 줄어드는 경기 침체를 감수하면 된다는 원리입니다. 이처럼 어느 것을 얻으려면 다른 것을 일정 정도 포기해야 하는 관계를 ‘상충 관계’ 또는 ‘트레이드 오프(trade-off) 관계’라고 합니다.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의 상충 관계는 정책 결정권자에게 희소식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실업률이 과하게 높지만 않다면 마음 편하게 물가 안정 정책을 취할 수 있고, 물가가 과하게 높지만 않다면 편안하게 경기 부양 정책을 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얼마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예측에 있습니다. 물가상승률을 1%포인트 낮추는 과정에서 국내총생산(GDP)이 몇 %포인트 줄어드는지를 실제로 여러 기관에서 연구해 발표합니다. 이를 ‘희생비율’ 또는 ‘희생률’이라고 부릅니다. 필립스 곡선은 우하향하는 곡선인데 처음에는 가파르게 내려가다 나중에는 완만해집니다. 물가상승률이 높은 구간에서는 희생비율이 작지만, 물가상승률이 낮은 구간에서는 희생비율이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급격한 금리 인상은 경제에 파장


물가 안정을 위해 활용되는 대표적인 정책은 기준금리 인상입니다. 기준금리는 각국 중앙은행이 시중 은행에 적용하는 정책 금리로서 시중 금리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기준금리를 높이면 시중 금리도 높아져 대출과 소비가 위축되고 이에 따라 물가상승률이 낮아집니다. 물가는 잡히겠지만 대신 어느 정도의 경기 침체는 피하기 어렵습니다.

기준금리 인상은 브레이크와 같습니다.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차가 뒤집힐 수도 있듯 기준금리를 급격하게 올리면 경제가 곤두박질칠 수도 있습니다. 이를 비행기의 착륙에 빗대어 경착륙(하드랜딩·hard landing)이라고 합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더라도 서서히 단계적으로 진행합니다. 물가 안정의 대가로 희생하게 되는 경기 위축을 최소화하기 위함입니다. 이를 연착륙(소프트랜딩·soft landing)이라고 합니다.

최근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습니다. 작년 3월 이전에는 제로(0%) 금리에 가까운 연 0.25%였던 기준금리가 현재는 연 5.5%로 총 5.25%포인트 올랐습니다. 같은 기간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7회에 걸쳐 총 2.25%포인트 올렸습니다. 그런데 올해 1월부터 7월까지는 미국과 달리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고 연 3.5%로 동결했습니다. 미 연준은 미국 경제가 희생비율이 낮은 구간(높은 물가상승률, 낮은 실업률)에 있다고 보는 반면,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경제가 희생비율이 미국보다는 높은 구간(낮은 물가상승률, 높은 실업률)에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심각한 반면 우리나라는 인플레이션이 다소 진정됐다는 의미입니다.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은 상충 관계에 있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모두는 높을수록 국민의 고통이 커진다는 점입니다. 이 두 값을 합한 것을 ‘경제고통지수’라고 부릅니다. 최근 7, 8월 기준 우리나라의 경제고통지수는 4.9(물가상승률 2.3%+실업률 2.6%)입니다. 이 둘은 두 마리의 토끼와 같아 모두 낮추기는 어렵겠지만, 희생은 최소화하고 이득은 최대화해서 이 둘의 합인 경제고통지수를 낮췄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철욱 광양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