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은 뒤엔 이곳을 벗어나기 바빠서, 제 앞길은 전혀 따지지 않는구나.
(飽去櫻桃重, 飢來柳絮輕. 但知離此去, 不用問前程.)
―‘모기에 대하여(영문·詠蚊)’ 범중엄(范仲淹·989∼1052)
기어이 피를 보고서야 마무리되는 인생 최초의 혈투는 모기와의 오랜 악연이다. 한밤중 무시로 잠에서 깨어나 녀석과 겨루었던 약 오르는 추억이 아련하다. 모깃불을 피워 쫓아내기만 하던 인도주의적인 방식부터, 향긋함을 위장한 독 연기로 저도 모르게 목숨을 앗아버리는 은밀한 도살법, 그리고 쫓고 쫓기는 고도의 신경전을 벌이다 ‘찰싹!’, 기어코 녀석의 피를 확인하고야 마는 통쾌한 보복전까지 녀석과 벌여온 쟁투 과정은 다양하다. 옛사람들의 경험담이라고 다를 바 없다. 당 유우석(劉禹錫)은 ‘난 7척 거구, 넌 가시만큼 작은 존재. 하지만 난 혼자요 너희는 다수이니, 나를 다치게 할 수 있지’(‘모기떼 이야기’)라 했고, 다산(茶山)은 ‘제 뺨을 제가 때리지만 헛방 치기 일쑤요, 넓적다리 다급히 치지만 녀석은 이미 떠나버렸네. 싸워봐야 공은 없고 잠조차 설치기에, 지루한 여름밤이 일 년처럼 길구나’(‘가증스러운 모기’)라고 했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