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카눈’ 한반도 관통] 영남 물폭탄… 1명 사망 1명 실종 군위 주민 “하늘 뚫린것처럼 퍼부어”… 구미선 천연기념물 소나무 쓰러져 창원 시민 구하던 경찰 급류 휩쓸려… 100m 함께 떠내려가며 구조해
물에 잠긴 대구 군위 마을 10일 제6호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대구 군위군 효령면 마을이 침수된 모습. 이날 군위 지역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인근 남천 제방이 붕괴됐고, 효령면 곳곳이 물에 잠겼다. 군위=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0일 대구 군위군 효령면. 마을 곳곳이 물바다가 된 모습을 지켜보던 한 주민은 허탈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날 아침부터 제6호 태풍 ‘카눈’이 물폭탄을 쏟아부으면서 지역 하천인 남천 수위가 급격히 상승하다 급기야 제방이 터진 것이다.
● 대구서 1명 사망, 1명 실종
지난달 집중호우 피해가 채 가시지 않은 영남 지역을 태풍이 할퀴고 지나가면서 지역에는 인명 및 시설 피해가 이어졌다. 제방이 터지고 남천이 범람하면서 농경지와 축사 곳곳이 침수되고 일부 마을이 고립됐는데 이 과정에서 사망자도 발생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10일 낮 12시 반경 효령면 병천교 아래 남천에서 물에 떠 있는 A 씨(67)를 119구조대가 발견했다.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A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다.● 맨홀 뚜껑 솟구치며 버스 관통
수압 못이긴 맨홀 뚜껑, 버스 뚫고 들어와 제6호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관통한 10일 오전 경남 창원시 성산구 대원동의 한 도로에서 맨홀 뚜껑이 솟구쳐 정차 중이던 시내버스 밑바닥을 뚫고 들어오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사진 출처 SNS
천연기념물 357호로 지정된 수령 400년의 경북 구미시 선산읍 반송(盤松·키가 작고 가지가 옆으로 퍼진 소나무)도 태풍을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경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경 반송 일부가 꺾였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소방당국은 일단 더 쓰러지지 않도록 조치를 한 뒤 접근을 차단했다. 이 나무는 높이 13.1m, 둘레 4.05m로 한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반송 중 하나다. 충북 보은군에선 수령 600년으로 추정되는 천연기념물 103호 ‘정이품송’의 가지 2개가 부러졌다.
이날 시간당 60mm 넘는 폭우가 쏟아진 창원에선 시민을 구하려던 경찰이 급류에 함께 휩쓸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10일 오전 9시 3분경 창원시 성산구의 한 사거리에서 60대 여성이 횡단보도를 건너다 갑자기 들이닥친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인근에서 차량 통제를 하던 경찰관 2명이 이를 목격하고 구조를 위해 달려갔지만, 물살이 강한 탓에 이들도 약 100m를 함께 떠내려갔다. 다행히 물 흐름이 약해진 틈을 타 경찰들이 여성을 구조했다.
울산과 부산에서도 강풍과 폭우 피해가 이어졌다. 이날 오전 4시 40분경 동구 방어진순환도로에선 가로 3m, 세로 4m 크기의 바위가 야산에서 굴러떨어졌다. 다행히 당시 지나던 차량이 없어 인명 피해는 없었다.
산사태-침수 한달만에 태풍 덮쳐… 예천 주민 대피, 오송은 제방 쌓아
지난달 예천 15명-오송 14명 숨져
“지금도 악몽” 다행히 큰 피해 없어
“지금도 악몽” 다행히 큰 피해 없어
제6호 태풍 ‘카눈’이 북상 중인 8일 오후 지난달 집중호우와 산사태로 큰 피해를 당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마을 입구에서 호우피해 이재민을 위한 임시주택 설치작업이 한창이다. 2023.8.8/뉴스1
산사태 피해를 입은 지 한 달도 안 돼 제6호 태풍 카눈을 맞은 마을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이날 마을 곳곳에 장대비가 내렸고 강풍이 불면서 일부 나무들이 바람에 꺾일 듯 휘어졌다. 주민들은 이미 지반이 약해진 만큼 산사태 등 추가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노인회관으로 피신한 마을 주민 유경호 씨(70)는 “지난달 산사태 때문에 지금도 비가 내리는 악몽을 꾼다”며 몸서리를 쳤다. 마을 주민 윤혜식 씨(82·여)는 “산사태를 겪은 후 산에서 작은 소리만 울려도 깜짝깜짝 놀란다. 겁이 나 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할 정도라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폭우 때 사망자 15명, 실종자 2명이 발생한 예천에는 이날 오후 5시까지 129mm의 비가 내렸지만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다.
6호 태풍 카눈이 북상 중인 10일 오후 충북 단양군 가곡면 한 주택이 범람한 하천 물에 침수되고 있다. 집 안에 있던 거주자 1명은 인근 경로당으로 대피해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2023.08.10. 충북소방본부 제공
청주시는 태풍이 접근한다는 소식에 지난달 범람했던 미호강 미호천교 인근에서 전날(9일)부터 이틀 동안 대대적인 임시제방 보강 작업을 진행했다. 모래주머니를 촘촘하게 쌓은 뒤 파란색 방수포를 덮었다. 그럼에도 10일 미호강 수위가 오르자 사고가 났던 궁평2지하차도 양방향을 통제했다. 지하차도 인근에서 만난 오송읍 주민은 “비슷한 사고가 반복될까 봐 비가 올 때마다 불안하다. 당국이 철저히 대비하길 바란다”고 했다.
창원=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
대구·예천=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구미=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청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