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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아픔을 과학으로 극복한 그들…‘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

입력 | 2023-08-11 09:57:00


1937년 일본 교토에 모인 조선인 과학자들. 왼쪽부터 한국 근대농업의 아버지로 불리는 우장춘, 화학 박사 학위를 받고 교토제국대 교수가 된 이태규, 합성섬유 비날론을 만든 화학자 리승기. 위즈덤하우스 제공

“1914년 세계 전쟁이 폭발할 때 각국 학자들이 다 각각 자기 조국을 옹호하며 적국을 공격하고 독일서는 학자들이 선언서까지 공포했다. 아인슈타인은 이에 서명하지 않고 황국주의를 불척하며 평화주의를 옹호…”

1922년 11월 동아일보에는 독일 출신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에 대한 특집 기사가 실렸다. 아인슈타인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고, 일본에 방문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그를 소개한 것이다. 특히 기사는 아인슈타인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군국주의에 맞섰다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나라를 잃은 유대민족 출신이 과학으로 세계에서 인정받고, 민족을 위해 대학을 세우며 후학을 양성했다는 아인슈타인의 서사는 당시 조선 지식인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과학을 공부하면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들끓었다. 이듬해엔 유학생들 주도로 ‘상대성 이론’ 강연이 조선에서 열렸다.

1922년 11월 18일 동아일보 기사 ‘아인스타인(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누구인가’.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의 저자는 “당시 조선에서 아인슈타인과 상대성 이론에 대한 지식은 지식인이 반드시 갖춰야 할 소양으로 인식됐다”고 했다. 동아일보DB

올 5월 한국형발사체 누리호가 3차 발사에 성공하는 등 우리나라가 과학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다는 희망이 퍼지고 있다. 하지만 약 100년 전 조선인들의 과학 열풍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삼성전자 수석연구원 출신으로 현재 누리호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과학자인 저자는 동아일보 등 신문을 통해 이를 들여다본다.

조선인들이 과학에 빠진 건 자강을 위해서였다. 일제의 차별을 넘어서 인정받기 위해선 과학이 가장 빠른 길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태규(1902~1992)는 화학 박사 학위를 딴 뒤 교토제국대 교수가 됐고, 이후 양자화학 분야에서 세계적 석학으로 성장했다. 한국 근대농업의 아버지로 불리는 우장춘(1898∼1959)이 1935년 ‘종의 합성’ 논문을 발표해 국제적 명성을 얻은 것도 과학이라는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자강은 곧 독립운동의 기반이라는 신념도 영향을 미쳤다. 독립운동가 서재필(1864∼1951)은 신학 공부를 하라는 후원자의 제안을 거절하고, 미국에서 의사가 된 뒤 한국으로 돌아와 과학을 공부해 독립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1931년 동아일보가 주축이 돼 시작한 ‘브나로드 운동’(민중 속으로)도 과학 공부를 강조했다. 1935년 서울 시내를 뒤흔든 ‘과학데이’ 행사 땐 작곡가 홍난파(1897~1941)가 작곡하고 시인 김억(1896~?)이 작사한 ‘과학의 노래’가 울려펴졌다. “과학 과학 네 힘의 높고 큼이여.”

물론 열망은 좌절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식인들이 최신 과학 이론은 습득했지만, 조선의 낙후된 현실은 전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 물리학자 유카와 히데키(1907~1981)가 1935년 중간자의 존재를 처음으로 예측하며 세계적 관심을 끌자 일제는 따라잡지 못한다는 패배감도 짙어졌다. 과학 발전이 독립은커녕 일제의 군사력 강화로만 이어진다는 지적도 있었다.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민태기 지음316쪽·1만8500원·위즈덤하우스

그럼에도 저자는 과학에 대한 조선인들의 열망이 지금의 우리나라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국뽕’(자국에 대한 과도한 자긍심을 가리키는 비속어)이라 비하할지 모르지만, 끊임없이 배워 현실을 바꾸려는 선조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고 말이다. 현재를 바쁘게 살아가는 과학자인 저자가 광복절을 앞두고 선조들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한 이유다.

“과학으로 우리는 식민지에서 벗어나고, 전쟁의 잿더미에서 불과 몇십 년 만에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는, 세계사에 유례없는 기적을 보여준 것이다. 이 책은 시대의 아픔과 비극을 과학으로 극복하려 했던 분들의 이야기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