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활 타오르는 산불이 주거지역으로 내려올까 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화재 발생 후)이틀 동안 전화도 안 돼서 도움을 요청할 방법도 없었고, 주변 사람들 소식도 몰랐다.”
8일(현지 시간) 미국 하와이 마우이섬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3일째 이어지는 가운데 섬 중부에 있는 쿨라 지역에서 숙박업을 하는 한인 리사 시시도 씨(75)는 1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긴박했던 상황을 이같이 전했다.
하와이주 당국은 10일 기준 사망자가 55명으로 집계됐으며 최소 1만400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당국에 따르면 불길은 70~80%가량 진압된 상태지만 수색이 계속되면서 인명피해 규모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관광객과 지역 주민 수백명의 소재가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외교부는 11일 현재 한인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지 교민들은 “관광객 쇼핑몰 등 건물 여러 채가 뼈대와 기둥만 남고 전소된 상태”라고 전했다. 최은진 전 마우이 한인회장은 “거리는 전신주와 나무들이 길가에 어지럽게 쓰러져 있고, 재 냄새 때문에 숨이 막혔다”고 전했다.
한인들의 재산 피해도 크다. 라하이나 지역에서만 한인이 운영하는 8개의 상점이 불에 탄 것으로 알려졌다. 교민 A 씨는 “한인 여성이 소유한 7개의 건물이 전부 불탔다. 불타는 건물에서 뭐라도 하나 건져 나오려고 건물로 들어갔다가 몸에 불이 붙어서 황급히 뛰쳐나와 바다로 뛰어든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현지에서 한인 대피소를 운영하는 서정원 목사는 “한 교민분의 집은 전소됐다고 들었다”고 했다.
전기와 통신도 상당 부분 끊긴 상태다. 현재도 1만1000명의 가구가 정전을 겪고 있다. 교민 시시도 씨는 “오늘(10일) 아침에야 전화가 복구됐는데 안부 메시지가 130통이나 와 있었다”며 “이웃집에 사는 한인이 자기 집이 괜찮은지 봐달라고 연락이 왔지만 출입이 통제돼 확인을 못 해줬다”고 전했다.
마우이섬에선 관광객들과 주민들의 대피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관광버스에 스쿨버스까지 총동원됐다. 관광객들을 카훌루이 공항으로, 주민들은 대피소로 이동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지 교민들은 힘을 모으고 있다. 대피가 마련됐던 교회에는 교민들이 보내온 식료품과 옷, 세면도구 등 생필품이 모였다. 한인회와 교회 자원봉사자들은 샌드위치 140인분을 만들어오기도 했다. 최영순 씨는 “공항 근처에 오갈 데 없는 관광객들을 위해 방을 내줬다”고 했다.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