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발견한 약으로 호전 뇌 문제라는 사실 알게 돼 ◇인류의 운명을 바꾼 약의 탐험가들/도널드 커시, 오기 오가스 지음·고호관 옮김/344쪽·1만7000원·세종
조현병을 앓는 사람들은 과거에도 많았다. 그런데 이것이 뇌 속에서 벌어지는 이상 반응 때문에 생긴 병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던 옛날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환자들을 흔히 귀신에 씌었다거나 마귀에 들렸다는 식으로 생각하곤 했다. 뇌 속의 전기신호와 물질 전달의 문제인 증상을 천사와 악마의 다툼 정도로 여기며 마력이나 주술을 연구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으니 도저히 제대로 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20세기 초, 뇌와 신경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후에도 이런 병에 대한 치료 방법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그나마 병원에 환자들을 분리해 두고 힘으로 제압해 두는 것 정도가 최선이었다. 그렇다 보니 과거에는 병실에 갇힌 채로 고생하던 환자들이 긴 세월 끔찍한 상황에 시달렸다는 등의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옛 정신병원 건물마다 한두 가지씩은 남아 있었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을 단숨에 바꾸어 놓은 한 화학 물질에 관한 이야기가 ‘인류의 운명을 바꾼 약의 탐험가들’에 소개돼 있다. 프랑스의 군의관이었던 앙리 라보리(1914∼1995)는 마취 수술을 할 때 더 안전한 수술을 하기 위해서 약품 한 가지를 실험했다. 아쉽게도 마취 수술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라보리는 실험에 참여한 환자들의 마음 상태가 크게 바뀐다는 이상한 사실을 알아냈다.
그 덕택에 클로르프로마진이라고 하는 이 약은 진정제로 쓰이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조현병 환자들을 위한 약으로 사용됐다. 뇌의 화학 반응을 변화시키는 클로르프로마진이라는 물질은 조현병이 일으키는 뇌의 문제도 어느 정도 막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몇몇 조현병 환자에게 이 약의 효과는 극적이었다. 며칠 전까지 도저히 의료진이 다룰 수 없어 쇠사슬로 묶어 놓아야 했던 환자들이 약을 꼬박꼬박 먹는 것만으로 일상생활이 가능해져 퇴원해도 될 정도로 변했다. 이런 일은 역사상 악마와 싸우던 어떤 마법사나 귀신을 쫓는다던 어떤 무당도 해내지 못한 일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과학 기술이 더욱 발전해 클로르프로마진의 부작용 또한 같이 연구됐다. 지금은 의사의 처방에 따라 더 우수한 다양한 약이 개발된 덕분에 정신질환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됐다.
곽재식 숭실사이버대 환경안전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