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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미국의 X세대, 소확행 인류의 탄생

입력 | 2023-08-12 01:40:00

◇90년대/척 클로스터만 지음·임경은 옮김/528쪽·2만5000원·온워드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배꼽이 훤히 보이는 티셔츠에 펑퍼짐한 청바지를 입은 한 20대 여성에게 리포터가 다가가 “남의 시선은 느껴지지 않느냐”고 묻자 나온 대답이다. 1994년 국내 한 방송 뉴스에 나온 이 영상은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던 ‘쿨’한 X세대를 보여주는 밈으로 떠올랐다.

미국 문화평론가가 1990년대 미국의 사회문화를 분석한 이 책의 내용은 이 같은 당대 한국 상황과도 닮은 구석이 많다. 1990년대는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길었던 냉전이 종식되면서 열렸다. 이전 세대가 전쟁과 냉전 등으로 자기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없었다면 1990년대는 달랐다. 저자가 1990년대를 대표하는 영화로 꼽은 ‘청춘 스케치’(1994년)의 명대사 “거 봐, 우린 이것만 있으면 돼. 담배 몇 개비, 커피 한 잔, 그리고 약간의 대화”처럼,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을 누리게 된 개인이 등장한 것이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정서는 ‘냉소’와 ‘회의주의’다. 저자는 “X세대는 냉전 이데올로기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베이비붐 세대에 대해 반사적 혐오감을 가졌다”며 “1990년대 초 젊은이들의 새로운 목표는 재미없는 주류 사회로부터 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이었다고 봤다. 록 밴드 너바나가 1991년 발매한 앨범 ‘Nevermind’는 당대 정서를 대표한다. 싱어송라이터 커트 코베인이 무미건조하게 읊조리는 “신경 꺼”란 가사는 세상일과 거리를 두려 했던 X세대의 공감을 샀다는 분석이 나온다.

저자는 1990년대를 끝낸 결정적 사건으로 1999년 컬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과 2001년 9·11테러 사건을 꼽는다. 20세기 말과 21세기 초 벌어진 두 사건 이후 사람들은 세상일이 자신과 무관하지 않음을 깨닫게 됐다. 너무 평범해서 때론 지루하다고 냉소해왔던 일상이 사실은 모래성처럼 무너지기 쉬운 것임을 자각한 것. 한국의 X세대 영화평론가 김도훈 씨는 “지구 역사상 마지막 낭만의 시절에 바치는 사랑 고백이자 이별 노래”라며 이 책을 추천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