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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한 물빛과 톡 쏘는 물맛… 왕과 대통령도 흠뻑 취한 힐링 명소[수토기행]

입력 | 2023-08-12 01:40:00

충북 청주




연초록색 물빛이 아름다운 대청호(아래 사진)에 자리잡은 청남대는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비롯해 수령 80년 이상의 반송들이 늘어선 반송길, 낙우송 가로수길, 봉황의 숲길 등 매력적인 산책로로도 유명하다. 

 

충북 청주는 조선의 왕과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이 휴식을 위해 찾은 곳이다. 도시 이름답게 맑은(청·淸) 물빛과 물맛이 통치자들의 주목을 끌었던 듯하다. 세종대왕은 이곳 약수에 반해 아예 행궁을 지었고,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풍광이 빼어난 대청호반의 청남대에서 휴식을 취했다. 창의력을 상징하는 물(水)기운 덕분일까. 한글 반포와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중대 정책들도 이곳에서 이뤄졌다. 청남대 개방 20주년을 맞은 올해 9월부터는 일반인들도 대통령 숙소에서 잠을 자볼 수 있게 됐고, 곱게 단장된 초정행궁에서는 약수와 함께 한옥스테이를 즐길 수 있다.

● 대통령 숙소에서 하룻밤 보내기

전망대인 봉황탑에서 내려다본 청남대 건물들. 가운데 잔디광장의 봉황 조형물을 중심으로 대통령기념관(왼쪽),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오른쪽 위), 본관(오른쪽 아래)이 삼각형 구도로 배치돼 있다. 

정확히 40년 전인 1983년에 건립된 청남대(청주시 상당구 문의면)는 대청호반에 자리 잡고 있는 대통령 별장이다. 한때 봄을 맞이하듯 손님을 맞이한다는 의미로 ‘영춘재(迎春齋)’로 불리다가, 1986년 7월 ‘남쪽의 청와대’란 뜻의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역대 대통령 5명이 총 88회(471일) 이곳을 찾아와 휴식과 함께 정국 구상을 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청남대는 2003년 4월 18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충북도로 소유권을 넘기면서 민간에 개방됐다. 이후 이곳은 지속적으로 변신한 결과 한 바퀴 돌아보는 데만 반나절 정도 걸리는 대규모 공원(184만4843㎡)이 됐다.

청남대는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된 공원이기도 하다. 124종, 11만6000여 그루의 조경수 및 143여 종의 야생화가 철마다 제 모습을 바꿔 가며 공원을 수놓고 있다. 때 묻지 않은 숲속과 호수에는 멧돼지, 고라니, 삵, 너구리, 수달, 날다람쥐 등이 서식하고 있다.

청남대의 매력은 짧지만, 특징적인 길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청남대로 진입하는 도로부터가 환상적이다. 대청호를 따라 청남대 정문 매표소까지 쭉 늘어선 가로수 길은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하다. 매표소를 지나 대통령기념관(체험관)과 본관을 연결하는 길에는 메타세쿼이아 숲길이 기다리고 있다. 음악분수와 양어장을 옆에 두고서 하늘을 가릴 듯 웅장하게 서 있는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한여름의 무더위마저 잊게 한다.

반송이 길 양쪽으로 사열하듯 늘어선 길(위 사진)은 대통령 침실이 있는 본관 건물로 이어진다.

대통령의 휴식 공간인 본관 앞으로는 반송 길이 눈길을 끈다. 수령 80년 이상의 반송들이 길 양쪽으로 사열하듯 늘어서 있는 게 장관이다. 또 대통령 전용 골프장(현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 근처의 낙우송 가로수 길은 김영삼 대통령의 조깅 코스로 유명하다. 이 길은 호반을 낀 풍경이 아름다워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도 인기가 높다.

본관 근처 오각정과 봉황탑으로 오르는 길은 빼놓을 수 없는 산책로다. 특히 전망대인 봉황탑으로 오르는 길은 ‘봉황의 숲’이라고 불린다. 봉황의 먹이인 대나무와 보금자리인 오동나무로 치장된 길이 이채롭다. 옛 군부대 진지에 조성된 봉황탑은 22m 높이의 나선형 구조를 하고 있는데, 청남대 일대를 360도 파노라마로 볼 수 있다. 예로부터 봉황은 태평성대와 성군(聖君)의 출현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져 왔다. 청남대 잔디광장에 봉황 조형물이 설치돼 있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뭐니 뭐니 해도 청남대의 하이라이트는 본관 건물이다. 본관은 5명의 대통령이 가족 또는 친지들과 머물면서 휴식을 취한 은밀한 장소였다. 2층에 있는 대통령 침실에서는 천기(天氣)가 하강함으로써 생성된 명당 기운을 체감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머물면서 좋은 에너지를 누릴 만한 공간으로, 서울 북악산 자락 옛 청와대 관저보다 훨씬 빼어난 기운이라고 할 수 있다.

본관 내부에는 대통령 침실(전시용 공간) 외에 1, 2층을 합쳐 가족과 손님, 경호원들이 머무르던 침실 10개가 더 있다. 바로 이곳 침실들이 9월부터 일반인들에게도 체험형 공간으로 제공된다. 대통령이 잠자던 곳에서 누구나 자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청남대의 이 같은 역사와 입지 조건은 충북 관광의 훌륭한 자원이 되고 있다. 김영환 충북지사는 “바다가 없는 내륙 도시 충북에서 충주호와 대청호는 국민의 생명수일 뿐만 아니라 충북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끄는 중심”이라면서 “민선 8기 도정의 비전인 레이크파크(호수공원) 르네상스 사업에서 청남대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세종대왕 쉼터에서 족욕과 멍때리기
지금으로부터 약 580년 전인 1444년, 조선의 4대 국왕 세종은 청주 초정리로 행차했다. 이곳의 약수로 지병인 눈병과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이곳의 약수를 ‘초수(椒水)’라고 소개하면서 “그 맛이 후추 같으면서 차고, 그 물에 목욕하면 병이 낫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후추처럼 톡 쏘는 탄산수인 초수가 나는 우물이 바로 초정약수인 것이다.

세종은 이곳에 행궁을 지어 봄과 가을 두 차례 총 121일간 머물렀다. 행궁에서 질병 치료를 하면서 한글 반포 마무리 작업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세종이 오랜 기간 머물렀던 것은 약수의 약효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세계광천학회가 세계 3대 광천수 중 하나로 꼽은 초정약수는 탄산과 마그네슘 등 인체 유익 성분을 다량 함유해 질환 치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탕 안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온몸이 따끔거리는 탄산 목욕을 즐기기 위해 지금도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세종대왕이 질병 치료차 머물렀던 초정행궁(위 사진)에서는 약수 족욕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현 초정행궁(청원구 내수읍 초정리)은 1448년 방화로 소실된 것을 2020년 청주시가 복원한 것이다. 이곳에는 원래 ‘영천(靈泉)’이라 불리는 3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세종대왕이 안질을 치료했다는 상탕,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마셨다는 원탕, 목욕이 가능한 노천탕이 그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탄산수 우물 한 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초정행궁 야외에는 무료로 노천탕을 재현해 초정약수로 족욕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곳의 족욕용 물은 차가운 것이 특징이다. 발을 담근 채 무더위를 달래거나 한가로이 멍때리기를 즐길 수 있다.

초정행궁 외관은 전통적이지만 내부 시설은 현대적이다. 왕이 자던 침전은 조선시대 밤하늘을 주제로 한 미디어아트관으로 꾸며졌고, 왕의 업무 공간인 편전은 천문과학관으로 활용 중이다. 초정행궁 뜨락에는 측우기, 앙부일귀, 혼천의 등 조선의 천문과학기기가 전시돼 있다. 한편 총 6개동 12개실 규모로 지어진 초정행궁 한옥체험관에서는 한옥스테이를 할 수 있다. 현 초정행궁은 재현 공사 당시 행궁의 유구가 발견되지 않아 원터인지 확인되지는 않으나, 초정약수가 나는 것만으로도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명당 터다.

● 청주의 명물, 압각수와 쫄쫄호떡

청주 명물로 수령 900여 년인 은행나무(위 사진). 충북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건축물인 충북산업장려관.

조선시대 청주읍성이 있던 청주 시내 중앙공원 일대에서는 잔잔한 스토리 여행을 즐기는 맛이 있다. 이곳에는 수령 900여 년의 은행나무(충북도 기념물)와 목조 2층 누각인 병마절도사 영문(충북도 유형문화재), 대원군 척화비(충북도 기념물) 등 유적이 적잖다.

이 중 나뭇잎이 오리발처럼 생겨서 압각수(鴨脚樹)라고 불리는 은행나무(높이 30m, 밑 둘레 8m)는 흥미로운 사연을 전하고 있다. 고려 말인 공양왕 때 이색, 권근 등 10여 명이 이성계 일파에게 맞서다 청주에서 감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1390년 여름 청주에서 대홍수가 발생했다. 성내 대부분 집들이 물에 쓸려가는 위급한 상황에서 이색 등은 감옥 옆에 있던 은행나무로 올라가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공양왕은 “이는 곧 무죄를 입증하는 증거”라며 이색 등을 풀어줬다고 한다.

생명을 구한 나무답게 은행나무는 청주 사람들 사이에서 “어르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나무 주변은 생기(生氣) 에너지가 충만하다. 이 은행나무 바로 뒤편으로는 청주의 명물인 ‘쫄쫄호떡’ 집이 있다. 은행나무 벤치에 앉아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쫄깃한 ‘쫄쫄호떡’을 맛보면 기운이 절로 충전되는 듯하다.

원래 은행나무가 있는 이곳 중앙공원 터는 충북도청이 있던 곳이다. 현재의 도청은 이곳에서 700m가량 떨어진 곳으로 이전했는데, 최근 도청 남서쪽 코너에 자리 잡고 있는 충북산업장려관(물산장려관)도 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충북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 건축물인 충북산업장려관(1936년 건립)은 독특한 출입구 외양과 예술적인 쉼터 공간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차 한잔의 여유와 근현대의 문화를 체험하는 맛도 남다르다.



안영배 기자·철학박사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