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 북한군 야간 열병식에 등장한 ‘M-2020’ 전차. [뉴스1]
우크라이나 대전차 무기 큰 활약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지난해 중순까지 대전차 무기로 보병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과 로켓이 가장 각광받았다. 최근 들어서는 드론이 새로운 전차 공격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개전 초 재블린 미사일은 어떤 러시아군 전차도 일격에 파괴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로 높은 신뢰를 받았다. 문제는 1발에 2억 원에 달하는 높은 가격이 미사일을 기증하는 미군이나 사용하는 우크라이나군 모두에게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반면 드론의 경우 저렴한 모델은 200만~300만 원, 비싼 것도 1000만~2000만 원이면 구할 수 있다. 드론에 재고로 널린 구형 대전차 수류탄이나 박격포탄 등을 개조해 붙이기만 하면 재블린보다 훨씬 먼 거리에서 적 전차를 공격할 수 있다. 이에 최근 전장에서는 우크라이나군, 러시아군 할 것 없이 드론 사용을 크게 늘리고 있다. 자연스레 드론에 파괴되는 전차나 차량, 야포 수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 모두에 전차는 매우 귀중한 자산이다. 새로운 유형의 대전차 무기가 여럿 등장하면서 전차의 생존 능력이 예전보다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강력한 주포와 두꺼운 장갑판을 지닌 전차는 여전히 공격·방어 작전을 막론하고 보병과 장갑차를 보호하는 데 대단히 효과적이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많은 전차를 확보하고자 동분서주하고 있다. 동시에 전차의 생존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벽돌 모양의 폭발반응장갑을 덕지덕지 붙이는가 하면, 적 미사일과 드론을 막고자 전차 주변에 새장처럼 생긴 철제 지붕을 두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야전에서 급히 취하는 임기응변일 뿐, 대전차 무기로부터 전차를 지킬 수 있는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
능동방어체계 대세, 직접 타격식 ‘하드킬’
K2 흑표 전차(오른쪽)용 능동방어체계(APS)의 대전차 로켓탓 요격 실험 장면. 국산 APS 개발에 성공했으나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K2에 탑재되지 못했다. [국방과학연구소 제공, 뉴스1]
최근 동유럽 각국이 체결한 전차·장갑차 구매 계약 내역을 들여다보면 거의 모든 국가가 APS를 기본 사양으로 요구했음을 알 수 있다. 노르웨이, 이탈리아, 리투아니아 등이 도입할 예정인 레오파르트 2A8, 한국이 수출용으로 각국에 제안하는 K2 전차에도 APS가 기본으로 장착된다. 최근 호주 장갑차 도입 사업에서 최종 승자가 된 한국산 AS21도 마찬가지다.
APS는 360도 전 방향의 위협을 감지할 수 있는 레이더와 통제 시스템, 요격탄 발사기로 구성된다. 시스템 자체가 크고 복잡해 제작비가 비싸고, 많은 전력을 소모하기에 아무 차량에나 장착하기 어렵다. 한국은 K2 전차 개발 과정에서 K-APS를 만들었지만, 높은 비용과 교리 부재 때문에 도입을 무기한 보류했다. K2 전차용 K-APS 가격은 20억 원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차륜형 장갑차 1대보다 비싼 가격이 K-APS 채용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APS 도입을 미룬 한국군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는 한국도 도입을 망설이는 APS가 북한군 전차에 달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7월 26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을 초청한 가운데 ‘무장장비전시회 2023’을 개최했다. 이 행사에는 2020년 첫 공개된 북한 신형 전차 ‘M-2020’ 개량형이 등장했다. 최근 북한은 M-2020 전차의 능동방어장치 시연 영상도 공개했다. M-2020은 3년 전 처음 등장했을 때도 포탑 전면과 측면에 위상배열레이더로 추정되는 박스형 물체를 장착하고 있었다. 포탑 측면에 요격탄 발사기로 보이는 원통들도 식별됐다. 이번에 공개된 시연 영상을 살펴보면 이 원통에서 발사된 요격탄이 전차를 향해 날아오는 RPG-7 대전차 로켓을 요격한다.
北 신형 전차, 韓 대전차 무기 대부분 방어 가능
우크라이나군 공격에 파괴된 러시아군 전차. [뉴시스]
매년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는 한국은 극심한 징집 자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장병 한 명 한 명이 모두 귀한 생명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에 따라 최근 장병 처우를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병사 월급 인상과 복지 증진에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한국군이 정작 실전에서 장병들을 보호할 장비 개발 및 보급에는 대단히 인색하다는 것이다. 매년 방산 전시회나 군 시연 행사에서 최첨단기술이 적용된 방탄 헬멧과 방탄복이 공개되고 있기는 하다. 다만 이런 장비들이 매우 더디게 보급되고 있다.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군대의 차량에는 지뢰 방호, 소총탄 방호가 기본 사양으로 적용되고 있다. 한때 군용 전술 차량의 대명사였던 ‘험비’나 차륜형 장갑차의 대표 격이던 ‘스트라이커’가 빠르게 퇴출되는 이유다. 2~3t 무게의 험비는 9~10t짜리 중장갑 차량인 합동경량전술차량(JLTV)으로 대체되고 있다. 18t짜리 스트라이커 자리는 30~50t 수준의 중장갑차들이 대신하고 있다. 이들 신형 군용차량 모두 대전차 지뢰 방호가 가능하다. RPG-7 같은 보병 휴대용 대전차 무기가 직격해도 내부 탑승 인원을 지킬 수 있는 강력한 방호력을 자랑한다. 일부 국가는 이것도 모자라 장갑차에도 APS를 장착하고 있다.
한국군은 각종 전술 차량과 기갑장비의 ‘방호력’보다 ‘경제성’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방호력을 키우는 세계적 트렌드에 지금도 역행하고 있다. 2010년대 이후 등장한 보병전투장갑차(IFV) 대부분이 30~40t 이상 중장갑 모델인 것과 달리, 한국군 K21은 25t에 불과하다. 한국은 17t짜리 경장갑 차량, 심지어 대전차 지뢰나 대전차 무기를 막지 못하는 K808을 도입 중이다. 이마저도 비싸다며 더 얇은 장갑을 두른 염가형 K806도 도입하고 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대부분 국가가 대전차 지뢰 방호·모듈식 장갑을 갖춘 20~30t 이상 중장갑 차륜형 장갑차를 도입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군이 도입하는 경장갑 차량은 비용 절감을 위해 버스나 트럭에 사용되는 400마력 엔진을 쓰고 있다. 엔진 출력이 부족해 나중에 추가 장갑재를 부착하기도 어렵다. 이런 장갑차에 장병 11~12명이 탄다. 유사시 지뢰를 밟거나 대전차 로켓이라도 1대 맞으면 탑승한 장병들의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극빈국 북한도 전차 방호력 높이는데…
1990년대 한국군에 K1 계열 전차가 대거 배치될 때부터 북한군의 휴대용 대전차 무기를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전차 방호력 강화를 위한 이렇다 할 조치가 없었다. 한국은 산이 많은 데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가 즐비하다. 대전차 무기를 휴대한 보병이 숨을 곳이 지천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한국군 당국은 전차의 방호력을 높이는 데 유용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폭발반응장갑의 경우 전차 1대 탑재에 2억~3억 원이 든다며 거부했고, 저렴하지만 효과가 큰 ‘슬랫아머’(철망형 장갑)는 주행 중 시야를 막아 안전사고가 난다는 이유로 채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APS를 장착한 M-2020 전차의 등장은 이제 북한조차 전차와 승무원을 보호하고자 투자를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극빈국인 북한도 저 정도인데, 세계 10대 경제대국 한국도 이제 전차 및 장갑차 방호력을 높이는 데 적극 나서야 하지 않을까.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02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