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대한 인식은 독립적 성향을 높인다. [GETTYIMAGES]
반면 돈이 타인에 대한 태도를 긍정적으로 바꾼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돈이 있으면 여유가 생겨서 다른 사람에게도 친절해진다. 다른 사람에게 금전적 지원을 하는 이들은 어쨌든 자기가 다른 사람을 도울 만큼은 돈이 있다고 생각한다. 먹고살 돈이 있는 사람이 문화생활도 즐긴다. 돈은 사람들로 하여금 주변을 돌아보게 만든다.
돈과 독립성의 관계
돈은 이 두 가지 경향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떤 경향이 더 강할까. 돈 때문에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과 주변을 돌아보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많을까.
이에 대한 유명한 연구로 캐슬린 보스 미국 미네소타대 교수 연구팀이 2006년 발표한 것이 있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한 집단에는 돈과 관련된 퀴즈를 풀게 하고, 다른 한 집단에는 돈과 관련 없는 퀴즈를 풀게 했다. 한 집단에는 돈과 관련된 인식을 심어주고, 다른 한 집단에는 돈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한 다음 진짜 실험에 들어갔다.
먼저 실험 참가자들에게 풀기 어려운 퍼즐을 주면서 퍼즐을 풀다가 잘 안 되면 연구진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된다고 말했다. 이때 퍼즐은 처음부터 혼자 힘만으로는 풀기 어렵게 세팅돼 있었다. 실험 참가자들은 혼자 풀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연구진에게 도와달라고 할 텐데, 이렇게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가 연구의 목적이었다.
무의식에서 돈에 대한 인식이 강한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시간과 돈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시간은 다를까. 다르다면 어느 쪽이 더 오래 걸릴까. 심리학에서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느냐 아니냐는 주변 사람에 대한 의존도, 스스로의 독립성 정도를 측정하는 데 의미 있는 변수다. 보스 교수는 이를 통해 돈이 개개인의 독립성 정도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를 알아보려 했다.
같은 연구팀이 2008년 돈에 대한 인식과 관련된 또 다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에는 돈에 대한 인식을 심어준 뒤 실험 참가자들에게 자신이 앉을 의자를 배치하라고 했다. 그리고 실험 참가자를 방으로 안내하면서 같이 이야기할 다른 한 명을 데려올 테니 방에 의자를 놓아달라고 요구했다. 실험 참가자는 기다리는 동안 의자 2개를 자기와 다른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배치했다. 이때 두 의자를 어떻게 배치하는지, 의자를 가깝게 배치하는지 멀리 배치하는지가 실험의 목적이었다. 돈에 대한 인식 여부가 자기와 다른 사람 간 공간 배치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려 한 것이다.
이 실험에서도 돈에 대한 인식을 심어준 집단과 돈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지 않은 집단의 결과가 다르게 나왔다. 즉 돈에 대한 인식을 가진 집단이 의자를 더 멀게 배치했다. 돈에 대한 인식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더 넓게 확보하고, 다른 사람과의 거리를 더 멀리 벌린 것이다. 이 연구는 미국에서 이뤄졌는데, 이후 한국에서도 관련 연구가 진행됐고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실험 전 돈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된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는 경향이 강했다. 반면 돈에 대한 인식이 없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의 관점을 더 중요시했다. 돈에 대한 인식이 있는 사람들이 좀 더 자기중심적인 것이다.
타인과 심리적 거리 멀어져
보스 연구팀은 이를 자기충족성(self-sufficient) 개념으로 설명한다. 자기충족성은 혼자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다.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일을 풀려고 한다. 혼자 하려는 경향이 강해 다른 사람들과 연결성이 떨어진다.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다른 이들과 심리적 거리가 멀어진다. 그래서 자신만의 공간을 더 중요시하고, 다른 사람들과 물리적 거리도 더 멀리 둔다. 좋게 말하면 독립성이 강하다는 것으로 개인적 성향이 뚜렷하다는 뜻이고, 나쁘게 말하면 이기적인 성향을 드러낸다는 의미다. 돈은 개개인을 독립성과 개인적 성향이 강하게 만든다. 정말 돈이 있을 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돈에 대해 생각만 해도, 돈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강하게 인식만 해도 독립적·개인적 성향이 심화된다. 돈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대부분 돈이 부족하다고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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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필자 생각은 좀 다르다. 여러분은 돈에 대해 인식하면 ‘나는 돈이 있으니 다른 사람이 없어도 나 혼자 충분히 잘해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가. 그런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은 아닐 것이다. 돈에 대해 인식하면 ‘나는 돈이 부족하다. 이대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달 생활비가 부족하든, 내년에 올려줘야 할 전세금이 부족하든, 퇴직 후 생활비가 부족하든, 노후 자금이 부족하든 돈과 관련된 문제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이것은 가족, 친척, 친구가 도와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나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점을 말이다. 막상 그때가 되면 주위 사람들이 도와줄 수 있긴 하다. 그런데 도움은 확실하지 않고 설령 도와준다 해도 단기적 해결책일 뿐이다. 분명 돈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건 나 자신이 해결할 수밖에 없다.
돈에 대해 인식하면 “나는 돈이 많아서 여유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쓰지 않아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라기보다 “나는 돈이 부족하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반드시 돈 문제가 발생한다. 이걸 해결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다”라는 무의식이 더 강할 것이라고 본다. 자기충족감이 강해지기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더 느끼는 것이다. 그만큼 자신에게 더 집중하게 된다.
‘돈, 돈, 돈’ 하는 사람이 다른 이들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성향이라고 여기지는 말자. 그만큼 더 불안하고 앞으로 다가올 돈 문제에 민감한 사람들이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벅차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여유가 적은 것이다. 돈에 대해 인식하면 더 독립적이 된다는 연구 결과들은 사실 그런 돈에 대한 불안을 반영한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최성락 경영학 박사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02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