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빚만 남기고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하죠?”
정년을 앞둔 한 직장인은 본인 노후 준비만으로도 벅찬데 아버지 부채까지 떠안게 돼 난감해했다. 흔히 상속이라고 하면 돌아가신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상속인은 재산과 함께 부채도 물려받아야 한다. 정년을 앞두고 부모가 남긴 부채를 떠안아야 한다면, 은퇴 후 삶이 얼마나 고단해질까.
● 상속을 승인할까, 포기할까, 한정승인할까
하지만 피상속인이 남긴 재산과 부채 중 무엇이 더 큰지 알 수 없다면 한정승인을 하면 된다. 단순승인을 했다가 부채가 더 많아서 낭패를 당할 수 있고, 상속포기를 했는데 부채보다 재산이 많아 손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정승인을 택한 상속인은 상속받은 재산 범위 내에서만 부채를 상환하면 되고, 본인 재산으로 채무를 변제할 의무는 없다.
상속포기와 한정승인은 상속 개시를 알게 된 날로부터 3개월 이내 가정법원에서 한다. 상속인은 한정승인을 신청할 때 상속재산목록을 함께 제출해야 한다. 상속재산목록에 기재하지 않은 재산을 상속받으면 법정 단순승인으로 본다. 단순승인을 하면 상속인은 재산과 부채를 모두 물려받는다. 따라서 상속받은 재산보다 부채가 많은 경우 이를 상환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 한정승인하면 사망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까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
대법원 판결의 쟁점은 사망보험금을 피상속인이 남긴 상속재산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상속과 무관하게 상법상 보험계약에 따라 상속인이 수령한 돈으로 봐야 할지 여부다. 전자라면 상속재산목록에 기재해야 하지만, 후자면 상속인 고유의 재산이므로 기재할 필요가 없다.
예컨대 A 씨는 B 씨가 3000만 원을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B 씨는 빚을 갚지 않고 버티다가 사망했다. B 씨는 자신을 계약자와 피보험자로 한 상속형 즉시연금에 가입해서 연금을 수령하고 있었는데, 만기 전 사망했다. B 씨의 자녀는 보험회사에서 즉시연금의 사망보험금을 수령했지만, 한정승인을 신청할 때 재산목록에 사망보험금을 기재하지 않았다.
과거 종신보험 사망보험금 관련 유사한 판결이 있었다. 아버지가 자신을 계약자와 피보험자, 아들을 수익자로 한 종신보험에 가입했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아들은 사망보험금을 수령했다. 다만 아버지가 남긴 재산보다 부채가 많아서 상속은 포기했다. 사망보험금을 상속재산으로 볼지에 대해 재판이 이뤄졌고, 당시 대법원은 사망보험금을 종신보험의 수익자인 아들의 고유재산이며 상속재산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상속재산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들은 상속포기를 했어도 보험금은 수령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리스크가 큰 사업을 하는 벤처기업 대표와 임원들이 종신보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계약자와 피보험자는 본인, 수익자는 자녀로 지정해 종신보험에 가입하는 것이다. 사업이 번창해 재산을 많이 모으면 자녀가 사망보험금을 받아 상속세를 납부할 수 있으니 나쁠 게 없다. 반대로 사업이 잘 안돼 빚더미에 앉으면 자녀가 상속포기를 할 수밖에 없더라도 사망보험금을 수령해 생활할 수 있게 된다.
● 사망보험금이 상속재산이 아니면 상속세도 안 낼까
반면 계약자와 수익자는 자녀, 피보험자는 아버지로 지정해 종신보험에 가입했다고 가정해 보자. 보험료는 자녀가 월급을 받아서 납부했다. 이번에도 아버지가 사망하면 아들이 보험금을 수령하게 된다. 다만 자녀가 보험료를 납부했기 때문에 보험금이 상속인의 고유자산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상속세 과세 대상이 아니다.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