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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의 인생홈런]‘갈색폭격기’ 신진식 “장사의 피로, 골프로 풉니다”

입력 | 2023-08-13 23:51:00


배구계를 떠나 ‘고깃집 주방장’으로 변신한 신진식 전 삼성화재 감독이 손질할 고깃덩어리를 들어보이고 있다. 용인=이헌재 기자 uni@donga.com

‘갈색 폭격기’라는 별명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신진식 전 삼성화재 감독(48)은 요즘 주방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배구 코트를 떠나 ‘고깃집 주방장’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과 함께 올해 초 경기 용인시에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파는 고깃집을 열었다. 함께 돈을 댄 그도 엄연한 ‘사장님’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주방장’으로 소개한다.

이헌재 스포츠부 기자

주방장을 고용하는 비용이 워낙 비쌌기에 그는 스스로 칼을 잡기로 했다. 지인의 가게와 정육점을 돌며 고기 손질을 익힌 지 3개월여 만에 그는 능수능란하게 고기를 써는 주방장이 됐다. 그는 “예전보다 칼질이 많이 빨라졌다. 지금은 주문이 밀려도 늦지 않게 손님상에 고기를 내놓을 정도가 됐다”며 웃었다.

틈틈이 홀에 나와 손님들을 맞이하고 고기를 나른다. 앞치마 차림에 모자를 쓰고 나타난 그를 본 손님들 중에선 “정말 신진식 선수 맞느냐”며 신기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영업사원’까지 겸하는 그는 손님들이 권하는 소주를 한 잔씩 받아 마시기도 한다.

“장사가 힘들면서도 새로운 걸 배워 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그는 “지금은 단골손님들도 꽤 생겼다. 손님들을 만나는 게 즐겁고, 함께 얘기하며 서로를 알아나가는 것도 재미있다”고 했다. 다만 매일 고기를 손질하다 보니 선수 때부터 고질이던 손가락 마디 사이 통증을 달고 산다.

그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을 일한다. 운동할 시간을 좀처럼 내지 못하는 그는 골프로 피로와 스트레스를 푼다. 주로 일요일에 골프를 치는데 가끔 평일 아침 이른 라운드를 한 뒤 가게로 출근하기도 한다.

그는 배구계에서도 알아주는 골프 실력자였다. 2019년 열린 배구인 자선골프대회에서는 생애 베스트인 3언더파로 메달리스트가 되기도 했다. 연습을 자주 하지 못하는 요즘은 스코어가 80대 초중반을 오르내린다. 한때 드라이버샷으로 250m를 날리던 장타자였지만 요즘은 230m 안팎의 안정적인 샷을 구사한다. 다소 불규칙한 생활 속에서도 그는 선수 때와 비슷한 70kg대 중후반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바쁘게 살다 보니 살이 잘 찌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장사로 성공한 뒤 다시 배구계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다. 당장 9월에 열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배구 해설 제안도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는 “주방장이다 보니 자리를 오래 비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향후 배구계로 복귀한 뒤 가장 맡고 싶은 자리는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프로팀 감독을 지낸 그는 “남자 배구의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다 보니 인기도 많이 가라앉은 측면이 있다. 젊은 선수들을 잘 키워 예전 한국 배구의 위상을 되찾는 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고 했다.

그가 배구계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선 지금 하는 장사가 잘돼야 한다. 그는 “돈을 많이 벌어야 주방장을 고용하고 본격적으로 외부 활동을 할 수 있다”며 “지금 하는 가게를 누구나 편히 찾아와 먹고 얘기할 수 있는 ‘배구인들의 사랑방’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