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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간토대지진 피해자 목소리… 상상력으로 되살리고 싶었다”

입력 | 2023-08-14 03:00:00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 황모과 작가
9년 전 추도식 참석 후 심층 취재
1923년과 2023년 ‘타임슬립’ 교차




2014년 일본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학살 피해자 추도식에 참석한 황모과 작가. 그는 “과거는 멈춰 있는 게 아니라 살아 움직인다. 우리가 과거를 어떻게 인식하고 추모할지에 달렸다”고 했다. 래빗홀 제공

“학살에 가담한 일본인들의 증언에서 조선인 학살 피해자들은 잔인하게 난도질당한 시체로 그려졌습니다. 저는 총칼에 스러져간 피해자의 목소리를 되살려내 역사의 빈칸을 채우고 싶었습니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을 다룬 소설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래빗홀·사진)를 15일 출간하는 황모과 작가가 말했다. 일본에서 유학 중인 그를 10일 화상으로 만났다. 황 작가는 2014년 일본 지바(千葉)현 다카쓰칸논지(高津觀音寺)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학살 피해자 추도식에 처음 참여한 뒤 9년간 일본인 생존자 증언 자료집과 그들의 후손을 찾아 나섰다. 그는 “처음에는 관찰자로서 참석했지만 9년간 매년 추도식에 참여하며 나 역시 이 역사에 책임을 져야 하는 주체임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찾아낸 증언에는 학살에 가담하거나 방관했던 일본인의 목소리만 있을 뿐, 조선인 학살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악’, ‘어머니, 아버지’, ‘아이고’와 같은 외마디 비명이 전부였다. 황 작가는 “기록되지 않은 목소리를 소설적 상상력으로 되살려내고 싶었다”고 했다.

소설은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1923년과 2023년을 교차한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기술을 이용해 조선인유족회 대리인인 한국 청년 민호와 일본인 유족회 대리인 일본 청년 다카야가 1923년 9월 1∼4일 학살 현장을 조사하는 이야기다. 황 작가는 “오늘을 살아가는 한일 양국의 두 청년이 100년 전 학살의 자리에 존재했던 조선 청년들을 만나게 하고 싶었다. 오늘과 과거가 얼굴을 마주함으로써 그날의 죽음이 학살이란 통칭으로서가 아니라 꿈과 재능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죽음으로 기억되길 바랐다”고 말했다.

황 작가는 학살 현장에 있었던 조선 청년들을 가장 평범한 모습으로 되살려냈다. 주인공 달출과 평세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소시민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조선인에 대한 혐오가 퍼지고 학살이 벌어지자, 죽을 줄 알면서도 위험에 처한 다른 조선인들에게 손을 내민다. 황 작가는 “이들에게도 지키고 싶은 가족과 친구가 있었다”며 “학살의 한복판에서 누군가를 지키며 같이 살고자 했던 평범한 이들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싶었다”고 했다.

‘살아 있는’ 한 사람의 얼굴로 그날의 진실을 목격한 21세기 청년 민호와 다카야가 내린 선택은 더 이상 방관자로 살지 않는 것이다. 학살 피해를 말하는 조선인유족회 측 주장을 뒤집기 위해 현장 조사에 참여한 다카야는 달라진다. 1∼3차 조사 때만 해도 학살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외면했던 다카야가 4차 조사 땐 다른 선택을 한 것.

황 작가는 “방관자였던 다카야가 학살 현장을 반복적으로 목격하면서 학살의 역사에 책임 의식을 갖게 된 것은 작지만 큰 변화”라고 했다.

“스스로를 책임의 주체로 인식하게 된 한일 양국의 미래 세대가 결국 고통스러운 과거사를 새 역사로 만들어낼 열쇠입니다. 이들이 기억하는 한 역사는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