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버리는 아이들] 일반고 재학생 1.25%가 학업 중단… 서울 강남3구, 전국 평균보다 높아 “내신 경쟁 피해 재수학원行 선택” 주요대 검정고시 입학자 증가세
2일 서울 양천구 종로학원 목동본원에서 수험생들이 자습을 하고 있다. 2023.07.02. 뉴시스
고등학교 3학년 나이인 A 군은 올해 재수종합학원에 입학했다. 학교는 1학년 때 자퇴했다. 재수종합학원은 보통 전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실패한 ‘졸업생’들이 오는 곳이지만 요즘은 ‘현역 고교생’이 학교를 버리고 오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고3 1학기 성적이 나온 최근에도 학원에 자퇴생들이 여럿 들어왔다.
A 군이 자퇴를 결심한 건 ‘학교에서는 더는 배울 게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수업 내용은 대입 준비에 별 도움이 되지도 않고, 수업 시간에도 떠들고 노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달 고교 졸업학력 검정고시를 본 A 군은 11월 수능을 치른다.
지금까지 학교는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라 인성, 사회성, 교우관계, 체력, 문화적 소양까지 학습하는 전인 교육기관이기에 대부분의 학생이 반드시 졸업해야 하는 곳으로 생각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입 준비를 위해서는 ‘포기해도 되는 곳’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교사가 학생들을 통제하지 못하면서 교권침해 사건도 빈번해지고 있다. 이는 학급의 학습 분위기를 해치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수능 준비’에 올인하는 학생들은 여건만 되면 학교를 떠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학교, 대입 도움 안돼”… ‘高1 자퇴→학원→수능 2번’ 코스 밟아
〈상〉 학교 대신 재수학원 선택 증가
高1 학업중단률, 高2보다 높아… 강남구 高1 100명중 4명 자퇴
“교사가 통제 못해 면학 분위기 엉망”
학교는 “건강 문제일것” 속사정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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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통제 못해 면학 분위기 엉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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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군(17)은 고등학교 2학년이던 지난해 11월 학교를 자퇴하고 현재 재수종합학원에서 공부 중이다. 학교에서는 ‘학업중단 숙려제’를 안내하며 “1∼7주간 상담을 받으며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다. 숙려제는 학생에게 학업중단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시간과 상담을 제공하는 제도다. 하지만 B 군은 거절했다. 다음 해 검정고시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쳐선 안 되기 때문이다. 고교 졸업학력 검정고시는 1년에 2번(보통 4, 8월) 실시된다. 퇴학일부터 시험 공고일까지의 기간이 6개월을 넘지 않으면 응시할 수 없다. 6월 초 전후로 공고되는 2회 차 검정고시에 응시하려면 전년도 11월 말까지 자퇴해야 안전하다는 게 불문율이다. B 군은 “학교에서 몇몇 과목은 선생님이 교과서를 읽어 주는 수준이었는데 학원에 오고 한 달 만에 성적이 많이 올랐다”고 말했다.
● 수능 두 번 보려 자퇴… “학교는 낭비”
학교를 그만두고 학원에서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B 군 같은 코스를 밟는다. 우선 1학년 때 자퇴를 한다. 이듬해(2학년 나이) 검정고시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본다. 시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1년 더 학원에 다닌다. 1년 뒤(3학년 나이) 다시 수능을 본다. 수능을 두 번 봤으니 ‘재수’지만 나이로 치면 현역 고3 친구들과 똑같이 수능을 보는 셈이다. 아예 처음부터 이런 ‘2년 계획’을 잡고 자퇴하는 학생들도 있다.
자퇴를 결심한 학생들은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낭비”라고 말했다. 고2였던 올해 자퇴한 C 군은 “학생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질문해도 답변을 못하고 수업 때는 교사용 자습서만 보고 줄줄 읽더라. 그래서 학교 수업을 잘 안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학원에 다니니 학교에서 쓸데없이 잠자던 시간을 다 공부에 활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D 군도 “학교를 안 다니면 사회성이 떨어진다는데 학교에 사회성이 떨어지는 친구들이 너무 많다”며 “학생이 선생님께 막 대하고 절도 사건도 자주 발생하는 교실에서 공부를 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내신으로는 원하는 대학에 가기 어렵기에 정시를 노리고 학원에서 수능 준비에 올인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상당수 학원에서는 학생이 내신 성적을 입력하면 남은 학년에 어느 정도 성적을 받아야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지 분석해준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상대평가 과목이 1학년에 46% 몰려 있다. 1학년이 끝나면 내신 성적의 거의 절반은 굳어진 것”이라며 “2, 3학년 때 아무리 잘해도 극복이 어렵다고 판단하면 자퇴, 학원 등록, 정시 올인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24학년도 전국 4년제 대학 227곳의 정시 비중은 21.2%로 수시(78.8%)보다 적다. 하지만 상위권 학생이 몰리는 서울 지역 주요 16개 대학은 43.0%다.
● “건강-심리적 문제일 것” 속사정 모르는 학교
학원가에 따르면 1학기 성적이 나온 뒤 이번 여름방학 기간에 재수종합학원 등록생들이 더 늘었다. 이런 ‘자퇴 러시’는 내년에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부는 이달에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 시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현 중2부터 적용되는데 현재 수능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입 제도가 크게 바뀌는 만큼 현 중3은 재수로 원하는 학교에 가기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임 대표는 “현 중3이 고교에 진학해 내신 점수가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으면 자퇴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학교는 학생들이 자퇴하는 진짜 이유를 잘 모르고 있다. 학생들이 “학교가 대입에 도움이 안 된다” “학원에 간다”는 속사정을 자세히 털어놓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도 상세히 상담하지 않는다. 서울에서 학업중단율이 상위권인 E고 관계자는 “몸이 안 좋아서 검정고시를 봐야겠다거나 규율을 지키는 게 어렵다는 학생이 많았다”고 했다.
서울 F고 관계자는 “내신의 불합리함보다는 심리적, 정신적 문제로 학교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학생이 많았다”고 전했다. 학생은 학교가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안 하고, 학교는 영문도 모른 채 학생을 떠나보내는 상황이 반복되는 셈이다.
대입 준비를 위해 자퇴를 결심하는 자녀를 둔 학부모는 ‘학교 부적응자’ 낙인 같은 것은 우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입을 위한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한 학부모는 “교사가 통제 못 할 만큼 면학 분위기가 엉망인 학교가 많다. 아이들도 진짜 친구는 대학 가서 사귀면 된다고 생각한다”며 “학교를 다니면 내신 준비, 수능에 반영 안 되는 과목 공부로 시간이 낭비되지만 학원에서는 수능만 공부하니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