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취 민원을 받은 전남 보성 한 돼지농가 농장주가 지난달 21일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서에는 “세상이 너무 너무 힘들다. 이제까지 열심히 살아왔는데 민원 제기로 너무 너무 힘들다. 주변 주민분들 그동안 정말 죄송했습니다”라는 내용이 적혔다. 대한한돈협회 제공
악취 민원에 시달린 전남 보성의 한 돼지농가 농장주가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양돈 농가들도 비슷한 민원 고충을 토로하며 “규제 속 축산업을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3일 대한한돈협회 등에 따르면 전남 보성군 웅치면에서 20년 넘게 양돈장을 운영해 온 60대 농장주 A 씨가 지난달 21일 농가 인근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대한한돈협회가 유족 측 동의를 받아 공개한 유서 일부 내용을 보면 “세상이 너무 너무 힘들다” “이제까지 열심히 살아왔는데 민원 제기로 너무 너무 힘들다” “주변 주민분들 그동안 정말 죄송했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군은 여러 차례 A 씨 농가에 나가 현장 점검을 실시한 뒤 농가에서 심한 악취는 나지 않는다고 판단했지만 반복된 민원을 고려해 A 씨에게 냄새 저감 방안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숨진 당일에도 민원을 받고 군청 관계자와 관련 통화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는 1999년부터 웅치면에서 축산업을 시작했으며 대한한돈협회 보성지부장을 역임했다. 그의 농장은 전남도 동물복지형 녹색축산농장, 농림축산식품부 깨끗한 축산농장 인증을 받는 등 지역 내에서 모범 농가로 꼽혔다.
대한한돈협회는 오는 16일 환경부 청사 앞에서 A 씨를 기리는 추모제를 진행할 계획이다.
협회는 성명을 내고 “한돈산업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소중한 단백질을 공급하는 식량산업”이라며 “그러나 늘어나는 냄새 민원과 행정 규제로 축산업이 위협받고 있다. 이를 견디지 못하고 생을 저버리는 상황에 전국 한돈 농가들은 깊은 좌절을 느낀다”고 밝혔다.
협회 홈페이지 추모란에는 “저희도 몇 대째 돼지농장을 운영하는데 냄새나고 기계 소리가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온다. 매일 민원 걱정을 하며 돼지를 키운다” “농장 존폐 기로의 위기를 겪은 뒤 마을 주민들의 서늘한 시선을 담담히 넘기기 어렵다” “돼지 키우는 게 죄라는 이야기 그만 듣고 싶다” “산업을 보호하고 주민을 이해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한돈을 위해 달려오셨는데 허망하고 원통하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혜원 동아닷컴 기자 hye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