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모는 일반적으로 사악하고 불길한 존재로 묘사된다. ‘계모’라는 우리말도 어쩐지 꺼림직하게 느껴진다. 영어에서 계모의 축복(stepmother’s blessing)이라는 말은 손톱 주변의 살이 일어난 부분으로, 잘못 건드렸다가는 생손앓이를 하게 되는 손거스러미를 가리킨다. 계모에 대한 편견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사악한 계모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그런데 닥터 수스의 동화 ‘호튼이 알을 품다’는 계모에 대한 편견에 맞서는 몇 안 되는 이야기 중 하나다. 호튼은 코끼리이고 메이지는 게으른 새다. 메이지는 아무것도 못 하고 알을 품고 있자니 심심해 죽을 지경이다. 그래서 지나가던 코끼리에게 자기가 팜비치로 휴가를 다녀오는 동안 알을 품어달라고 부탁한다. 코끼리는 덩치가 큰 자기한테 그렇게 작은 알을 품어달라고 하자 어이가 없지만 거절하지 못한다. 며칠이면 돌아온다던 메이지는 몇 주, 아니 몇 달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도 호튼은 알을 품는다. 구경거리가 되어도 계속 품는다. 드디어 알이 조금씩 갈라지면서 새끼가 나오려고 한다. 그런데 나 몰라라 하며 살던 메이지가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다가 그를 알아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그건 내 알이야! 너는 나한테서 그걸 훔쳤어! 당장 내 둥지에서 내려오고 내 나무에서 꺼져.” 가엾은 호튼은 슬퍼하며 나무에서 내려온다. 그 순간, 그가 지난 51주 동안 지극정성으로 품었던 알이 활짝 갈라지며 새끼가 나온다. 그런데 그것은 메이지를 닮은 게 아니라 귀와 꼬리와 코가 호튼을 닮은 코끼리 새다.
자신이 낳은 알이 아님에도 온 정성을 기울여 어미 대신 품어주자 그를 닮은 새끼가 태어나는 이야기는 잘 들여다보면 계모에 관한 우화일 수 있다. 그것은 생모는 천사처럼 선하고 계모는 사악하다는 틀, 어쩌면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온 그 틀을 깨고 엄마보다 더 엄마 같은 새엄마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