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벌주의’ 논란 최근 강력사건, ‘묻지마’ 범죄 늘자 국민 대다수 높은 형량 원해 사회적 공분 산 사건 터지면 서둘러 법 제정 및 양형 반영 범죄 예방 효과는 입증 안 돼… 피해자 고통 치유에는 효과
《최근 범죄가 흉포화하고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사례가 많아지면서 형벌의 강도도 함께 높이는 ‘엄벌주의’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 법무부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 촉법소년 연령 하향, 살인 예고 온라인 글 등을 처벌하는 ‘공중 위협죄’ 신설 등을 추진하고 있다. 또 음주운전, 보복범죄 등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나 첨단기술 유출, 주가 조작 등 국가와 국민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범죄에 대해서도 형량을 높여 가는 추세다. 여기에 최고 형량이 징역 10년이었던 영아살해죄처럼 시대의 변화에 뒤떨어진 법 규정들 역시 바꿀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
하지만 많은 세금이 든다는 것이 단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수감자 1인에게 드는 평균 비용은 연 2500만 원 정도. 가석방 없이 50년간 수형 생활을 한다고 하면 12억 원이 넘는 돈이 든다. 고령이 될수록 치매 관절염 같은 의료비가 추가된다. 또 사형과 마찬가지로 범죄 예방 효과는 실증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다. 인권 침해의 논란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종신형은 응보적 관점에서 사회 복귀를 절대 못 하게 하는 것인데 교화의 기회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비록 범죄자라도 인간성을 파괴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촉법소년 연령의 하향
촉법소년의 범죄 현황은 심각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최근 5년 동안 강력범죄를 저지른 촉법소년이 3만5000여 명에 달한다. 재범률도 성인 보호관찰자의 3배가 된다. 어리다고 봐주기에는 성인 뺨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촉법소년들은 형법이 제정된 1950년대 초와 비교할 때 신체나 정신적 발달 면에서 판이하게 다르다. 현재 13세 남자아이의 평균 키는 165cm로 1960년대 성인과 비슷하다. 여기에 13세와 14세의 범죄 발생 건수에 차이가 없고 특징도 다르지 않다. 2019년 여론조사에서도 촉법소년에 대해 ‘현재보다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와 ‘성인과 같이 처벌해야 한다’는 응답을 합치면 83.6%나 됐다.
외국의 경우 미국은 주마다 다르지만 플로리다주의 경우 7세부터 형사처벌한다. 영국은 10세, 독일 일본 오스트리아 등은 14세다.
하지만 연령을 한 살 낮춘다고 해서 범죄가 줄어들거나 현재 추세가 꺾인다는 보장이 없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청소년 범죄는 가정환경 등에 많이 좌우되고 반성할 여지도 큰데 너무 이른 나이에 범죄자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대법원도 올 4월 법무부 법안에 대해 “사회적 지원 없이 연령 하향으론 근본적 해결이 이뤄질 수 없다”며 반대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연령 하향은 현실을 감안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심각한 수준의 강력 범죄를 저지른 촉법소년에 대해선 형사처벌의 길을 열어둘 필요가 있지만 그 숫자는 얼마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엄벌주의 효과 논란
형량 강화는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은 아니다. 1980년대부터 미국 유럽에서도 엄벌 경향이 점점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미국의 주들에서 도입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특히 9·11테러 같이 불특정 다수에 대한 범죄를 겪고 난 뒤 범죄자 인권보다 다중의 안전과 범죄 억제가 보다 중시되는 경향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엄벌주의 성향이 가장 강한 미국의 경우 전 세계 인구의 4%를 차지하는데 전 세계 수감자의 24%를 보유하고 있다. 사형제가 있는 주의 평균 살인율은 사형제가 없는 주보다 높다. 엄벌만으로는 강력범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교화나 개선 등의 가능성을 없앤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는 셈이다. 특히 예상을 뛰어넘는 범죄가 대중적 공분을 일으킬 때마다 신속하게 법률이 제정되거나 양형기준이 상향된다. 정치인에게도 손쉽게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수단이어서 ‘형벌 포퓰리즘’이 발생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근대 사법의 역사는 국가의 자의적 형벌권 남용을 막기 위해 피의자의 권리 보호와 부당한 대우 방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 같은 사법제도가 틀이 잡힌 상황에선 잔혹한 범죄로 인한 피해자의 고통과 처지를 이해하는 관점 역시 중요해지고 있다. 범죄로 인해 소중한 존재를 잃거나 일상생활이 파괴된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겐 그들의 고통보다 지나치게 낮은 형량은 고통을 가중시킬 수 있다. 영국에선 2019년 17세 소녀 엘리가 동급생에게 13차례나 칼로 찔려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당시 영국 소년법에 따라 가해자는 12년 6개월의 징역형을 받는 데 그쳤다. 이에 분노한 부모는 미성년자 살인범의 형량을 높이자는 캠페인에 나섰다. 2년 후 희생자의 이름을 딴 ‘엘리의 법’이 제정돼 17∼18세의 살인범에게 최고 27년형이 가능하도록 바뀌었다. 국내에서도 ‘민식이법’ ‘윤창호법’ 등 피해자 이름을 딴 법이 늘어나는 것은 피해에 상응하는 처벌이 피해자들의 상처를 보듬는 수단의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형량을 높이면 범죄가 줄어든다’는 단순한 엄벌 논리보단 복잡하고 예기치 못한 현대사회의 범죄에 대한 법의 공백이 없도록 막는 것이 중요하다. 피의자의 권리를 예전처럼 보장하면서도 피해자의 고통을 적극 대변하는 양형기준과 형사·사법 정책의 개발이 시급한 상황이다.
서정보 논설위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