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볼코노고프 대위…’ 23일 개봉 95만명 처형 ‘스탈린 공포정치’ 다뤄 男주인공 보리소프 연기 깊은 인상
영화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에서 볼코노고프 대위가 비밀경찰 조직에서 무장한 채 달아난 뒤 자신의 상사 골로브냐에게 전화해 탈출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슈아픽처스 제공
“저들이 반역자나 테러범이 되면 그땐 너무 늦은 거야. 그래서 오늘, 지금, 미리 처형하는 거지.”
제78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자 소련의 스탈린 공포정치 시대에 자행된 ‘피의 대숙청’을 고발한 영화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가 23일 개봉한다. 역사상 가장 끔찍한 대량 학살 중 하나로 손꼽히는 ‘피의 대숙청’(1937∼1938년)은 스탈린 체제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색출해 처형한 사건이다. 피해자는 95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영화의 배경은 이오시프 스탈린(1878∼1953)의 공포정치가 극에 달했던 1938년 소련이다. 공산당 고위 정치인 세르게이 키로프가 암살된 이후 스탈린은 반혁명분자 색출을 지시했고, 무분별한 숙청이 시작된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러시아 배우 유리 보리소프는 무고한 사람들을 처형했다는 죄책감과 용서받고 싶다는 욕심 안에서 허우적대는 한 남자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연기했다. 광기가 엿보이면서도 슬픈 눈빛이 인상적이다. 그는 2021년 제74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영화 ‘6번 칸’의 남자 주인공 료하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번 영화의 연출은 나타샤 메르쿨로바 감독이, 각본은 알렉세이 추포프가 맡았다. 부부인 두 사람은 넷플릭스의 첫 러시아 오리지널 드라마인 ‘안나K’의 공동 감독으로 발탁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메르쿨로바 감독은 “보리소프의 본모습을 끄집어내기 위해 그와 함께 시나리오를 읽은 다음 다시 수정하기를 반복했다”고 밝혔다. 시나리오 수정본을 27개나 만들고 나서야 촬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매 순간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농담 한마디에도 반혁명분자로 몰려 총살당했던 아슬아슬한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심정이 그대로 다가와 고통스럽다. 메르쿨로바 감독은 “이 영화는 공포심에서 영감을 얻었다. 영화의 근원은 폭력과 침탈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이다. 스스로를 구하려는 이기적인 동기에서 출발하지만 타인의 고통을 체감하고 진정으로 뉘우칠 수 있도록 성장하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