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태나주 극한 폭염-산불-홍수에 “석탄-석유 등 개발 쉽게 만든 탓” 청년 16명, 주정부에 ‘살 권리’ 訴 NYT-WP “기후변화 역사적 판결”… “실효성 없는 선언적 판결” 평가도
미국 몬태나주 법원이 14일 “주 정부가 기후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화석연료 개발을 승인해 건강한 환경에서 살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며 이 지역 청소년 16명이 제기한 소송에서 해당 정책에 대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 소송을 주도해온 비영리단체 ‘우리 아이들의 신뢰(Our Children’s Trust)’ 회원들이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어 달라”며 연설을 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의 신뢰’ 유튜브 영상 캡처
“43.3도까지 오르는 폭염과 산불로 목장이 한 달간 정전돼 가축들을 먹일 물을 퍼올릴 수 없었고 소들은 죽거나 삐쩍 말랐어요.”(리키 헬드·22)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가족들과 허클베리를 수확해 잼과 시럽을 만들어 생활하는데 산불로 모든 게 불탔어요.”(새리얼 샌도벌·20)
“강에서 플라잉 낚시 하는 걸 좋아해요. 기온이 오르고 땅이 메마르면 물고기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실감했어요.”(키안 태너·18)
● ‘건강한 환경서 살 권리’ 인정한 법원
이 소송이 제기될 당시인 2020년 몬태나주에서는 심한 산불과 홍수 등 이상기후 현상이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공화당이 다수인 주 의회는 주 정부가 화석연료 관련 사업 승인 여부를 판단할 때 온실가스 배출량을 조사하지 않도록 하는 정책을 만들어 가스정 및 유정 개발, 석탄 채굴 사업을 쉽게 만들었다. 몬태나는 가스정 5000여 개, 유정 4000여 개, 정유소 4개, 탄광 6개가 있는 미국 내 대표적인 화석연료 생산지다.지역 청소년들은 주 의회와 정부의 조치로 인해 주민들과 미래 세대들이 위험에 놓였다며 해당 정책이 주 헌법에 위배된다는 취지의 소송을 냈다. 몬태나주 헌법은 ‘주민의 삶을 유지하고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주 정부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반면 주 정부는 재판에서 “기후위기는 전 지구적인 문제로 몬태나주의 탄소 배출량은 전 지구적 흐름을 바꾸기엔 미미한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캐시 실리 몬태나주 지방법원 판사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조사하지 않은 주 정부에 대해 주민들의 헌법상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 판결의 실효성 두고 시각 엇갈려
미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등은 ‘역사적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리처드 라자루스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주 정부가 기후변화와 관련된 헌법상 권리를 침해했다는 판결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획기적 승리”라고 설명했다.다만 이번 판결의 영향력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몬태나주에선 환경권과 관련한 주 정부의 의무가 헌법에 명시돼 이 같은 판결이 나올 수 있었지만, 미국에서 비슷한 조항이 있는 주는 하와이, 펜실베이니아, 매사추세츠, 뉴욕 등 소수라고 AP통신은 전했다. 환경법 전문가인 짐 허프먼은 AP통신에 “이번 판결은 단순히 주 정부가 헌법을 위반했다는 ‘선언적 판결’로서 주 정부에 특정 조치를 명령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반면 이번 소송에서 청년들을 대리했던 환경단체 소속 변호사 필립 그레고리는 “몬태나주 판결이 다른 주에서 구속력을 갖지 않지만 내년에 있을 하와이주 재판 등 다른 주 판사들에게 지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와이주에서도 청소년들이 주 교통부가 온실가스 배출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사용을 홍보하는 것이 환경보호 의무에 위배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