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버리는 아이들]〈하〉 입시 루트 된 ‘비인가 국제학교’ “모든 수업 영어로 하고 선행학습”, 학부모 “입시 유리” 공교육 포기 “아이비리그 진학” 과장 광고도 교습비만 1년에 2000만원 넘어… 강남-분당-판교 등 50여곳 성행
A 양(11)은 지난해 학교를 그만두고 2년째 학원에 다닌다. 일명 ‘비인가 국제학교’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모여 국어 영어 수학 등 수업을 듣는다. 단, 학교와 차이점이 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과정까지 모두 영어로 진행된다. 학제도 미국식(G1∼G12)이다. 마치 ‘학교’ 같은 이 학원의 교습비는 월 150만 원 정도. A 양의 어머니는 “입학금과 교복·교재비 등을 포함하면 연간 교습비가 2000만 원 정도”라며 “일반 학교를 보내도 학원비를 감안하면 그만큼 든다”고 말했다.
● ‘더 빠른’ 영어 학습 위해 공교육 포기
과거엔 해외에서 살다 온 학생들이 국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이 같은 학원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영어 학습을 위한 사교육으로 변질됐다. 서울 강남의 한 학부모는 “영어유치원만으로는 영어 노출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영유아 때 다져놓은 영어 실력을 유지하기 위해 보낸다”고 했다. 일반 초교에서는 초3부터 알파벳을 배운다. 이미 ‘영유’에서 영어를 선행학습한 아이들이나 학부모 입장에서는 학교의 초1, 2 과정이 ‘시간 낭비’로 비치는 것이다. ‘공교육만 포기하면 학습적으로 아이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인식도 일부 학부모들 사이에 퍼져 있다.
● ‘선행학습’ 광고로 학부모 끌어모아
최근에는 아예 서울 강남 유명 학원장과 손을 잡고 입학설명회를 연 비인가 국제학교들도 있다. 선행학습과 입시에서 유리하다는 점을 광고하는 것이다. 이 비인가 국제학교들은 “초1∼초3 시기에 영어, 수학을 중3 과정까지 선행학습할 수 있다”고 내세운다. 기자가 실제 한 학원에서 입학 상담을 받아봤을 때 해당 학원 관계자는 “공립학교는 초3까지 학습이 느슨하다. 우리 학원에서 영어와 수학을 다져놓고 고학년이 되면 공립초로 옮기는 학부모들이 많다”며 “우리는 싱가포르식 수학을 가르친다”고 말했다. 이 학원은 처음에 ‘영유’로 시작했다가 학부모의 수요를 반영해 최근 초3 과정까지 확장했다. 사교육 현장에서는 영어유치원을 졸업하고 비인가 국제학교에서 초등 혹은 중등, 고등과정까지 마치는 것이 일종의 ‘입시 루트’로 여겨지고 있다. 주요 대학 ‘국제학부’ 등 외국어 혹은 외국 관련 학과로 진학할 때도 이런 방식이 유리하다고 학원들은 강조한다. 입시에 필요한 과목들을 대부분 모두 가르치기 때문에 다른 추가 사교육이 필요 없다는 점도 내세운다. 강남의 한 학부모는 “자녀가 학교에 다닐 땐 학원을 몇 개씩 보내야 했다. 비인가 국제학교로 옮긴 뒤에는 학원 숫자를 많이 줄였다”고 말했다.
● ‘아이비리그 진학’ 등 과장 광고 조심
비인가 국제학교들은 원어민 강사진에 대해서는 ‘대부분 교육 전공자’, ‘70% 이상이 교원 자격이 있다’라는 식의 추상적인 정보만 공개한다. 나이스 학원민원시스템에도 학원별 원어민 강사의 학력이나 경력 등 구체적인 사항은 공개되지 않는다. 인가받은 학교는 학교 입지가 유해시설과 차단됐는지, 재난으로부터 안전한지 등 검사를 받지만 비인가 국제학교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공교육과 현행 입시제도에 대한 불신이 이런 기형적 형태의 교육기관을 낳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대 입학관리본부 연구교수를 지낸 김경범 서어서문학과 교수는 "학부모의 다양한 자녀 교육 욕망을 공교육이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