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가르 드가는 발레리나를 그린 유화나 파스텔화로 유명하다. 무대 위에서의 화려한 모습보다는 무대 뒤나 연습 중인 무용수의 일상을 포착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러나 그의 수많은 작품 중 가장 논쟁적이면서도 유명한 건 오히려 조각상이다. ‘14세의 어린 무희’(1880년경·사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대체 무엇 때문에 논쟁이 된 걸까?
모델은 파리 오페라 발레학교에 다니던 14세 소녀 마리 반 괴템이다. 그녀의 엄마는 벨기에 출신 이주 노동자로 남편을 여읜 후 세탁부와 재단사로 힘겹게 일하며 세 자녀를 돌보고 있었다. 1880년대에는 괴템처럼 주로 가난한 집 딸들이 돈을 벌기 위해 오페라단에 입단했다. 어린 무희들은 그들을 지켜보던 부유한 남자 후원자의 손에 이끌려 원치 않는 관계를 맺곤 했다. 소녀를 구제해 준 건 드가였다. 1878년에서 1881년까지 드가는 괴템을 모델로 고용해 임금을 지불했다.
이 작품이 1881년 제6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공개되자 사람들은 경악했다. 아름다워 보이기는커녕 가난한 무희의 비참한 현실과 육체의 고통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이 일그러져 있어 자신이 원치 않는 일을 강요당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다.
드가의 조각은 작가 사후에 인정받았다. 밀랍 복제품뿐 아니라 28점이 청동으로 제작돼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됐다. 괴템은 어찌 됐을까? 논란의 전시 이후 발레단에서 해고되었다. 모델을 서느라 수업에 자주 빠진 탓이었다. 대신 작품 속에서 영원한 발레리나가 되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