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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박중현]‘세대 간 富의 재분배’ 시금석, 신혼 증여 비과세

입력 | 2023-08-16 23:45:00

암암리에 용인되던 증여세제 현실화
‘富의 대물림’ 프레임 탈피 가능할까



박중현 논설위원


국민 실생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세금 제도를 한국처럼 매년 갈아엎는 나라도 드물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작년만 해도 법인세율, 소득세 구간, 종합부동산세 제도를 뜯어고쳤다. 세제의 큰 틀에 손대지 않고 ‘핀셋 감세’를 하겠다는 정부의 내년도 세법 개정안이 오히려 이례적인 경우다. 2년 연속으로 거대 야당과 세금 문제 때문에 격돌하긴 부담이 크고, 올해 세수 결손이 40조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돼 감세 등을 밀어붙이기 어렵게 된 게 이유다.

대형 세제 개편 이슈가 빠지다 보니 올해는 신혼부부 결혼자금에 대한 증여세 비과세 한도 확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지금도 10년간 5000만 원까지 자녀에게 물려줄 때 증여세를 내지 않는데, 결혼하는 자녀에겐 그 한도를 더 늘려 주자는 거다. 혼인신고를 전후해 2년씩 총 4년 안에 부모나 조부모가 재산을 자녀, 손자녀에게 물려주면 기존 5000만 원에 1억 원을 더한 1억5000만 원까지 세금을 면제해준다. 신랑신부가 양가에서 세금 없이 3억 원까지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런 증여세제 개편이 청년층의 결혼, 출산을 장려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적극 찬성하고 있다. 평균 결혼 비용이 3억3000만 원, 이 중 2억8000만 원이 주거 마련에 쓰인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한다. 내년 4월 총선에서 청년층의 표를 늘리는 데 보탬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는다. 반면 ‘부의 대물림’에 이념적 거부감이 강한 더불어민주당은 반발했다. 이재명 대표의 첫 반응이 “또 초부자 감세냐”다. 1억5000만 원씩 결혼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되느냐는 거다. 받을 게 없는 청년에겐 상실감만 줄 것이란 비판도 이어졌다. 다만 세게 반대하다가 오히려 청년층 표가 깎일까 봐 걱정하는 모습도 엿보인다.

이념이나 형평성 문제를 빼고 본다면 비과세 한도 확대는 긍정적 측면이 적지 않다. 올해 상반기 서울의 평균 전셋값은 5억 원 정도다. 직업이 있어도 신혼부부가 부모 지원 없이 저축과 대출만으로 집을 구하기 어렵다. 세무사와 상담하고, ‘가짜 차용증’을 쓰면서 자녀들을 지원하는 부모가 수두룩하다. 세정 당국도 눈에 띌 만한 액수가 아니면 잘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사실상 방치했던 탈세 관행을 양성화, 현실화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사안에는 세제 현실화를 뛰어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바로 ‘세대 간 부의 재분배’를 어느 수준까지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사회적 합의의 문제다. 현재 한국 베이비 부머들의 나이는 60∼68세. 고도 성장기, 집값 폭등기를 거치며 역사상 가장 많은 자산을 축적한 부모 세대다. 부동산, 금융자산을 합해 한국 가계 순자산의 46%를 60세 이상이 갖고 있다.

이에 비해 연봉 많이 주는 일자리는 찾기 어렵고, 비싼 주거비를 감당하기 버거운 자녀 세대들 사이에선 돈을 얼마나 절약하며 살 수 있는지 서로 경쟁하는 ‘거지 배틀’이 벌어진다. 고령층은 돈이 있어도 쓰지 않고, 청년들은 쓰고 싶어도 쓸 돈이 없다. 일본의 선례가 보여주듯, 이 문제로 인한 소비 위축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 날이 머지않았다.

그런 점에서 정부 여당이 증여세 비과세 한도 확대를 비혼(非婚), 저출산의 해결책처럼 내건 것은 핀트가 어긋났다. “재산 물려줄 테니 빨리 결혼하라”는 부모의 독촉에 배우자를 서둘러 찾는 청년은 쌍팔년도 드라마에나 나온다.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친구들한테 ‘비혼 축의금’을 거두는 게 요즘 청년들이다.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부모 세대의 부를 자녀 세대에게 나눠주는 길을 넓게 열어주고, 이에 대한 사회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게 더 중요한 일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