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처음 봤을 때 인상에 남는 장면은 원폭실험이 성공했을 때의 붉고 검은 구름이었다. 거기에서 생각이 멈춰버렸다. 그리고 실제로 원폭이 떨어진 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영상을 오펜하이머가 보고 있는 장면에서 화면에 보이지 않은 참상 장면이 내 머릿속 가득 펼쳐졌다.
그는 가족에게도 털어놓은 적이 없는 이야기를 두툼한 편지로 보내주었다. 그러다 보니 그녀가 평생 안고 가야 할 피폭의 후유증, 정신적 트라우마, 자식들에게 전해질지도 모르는 유전에 대한 불안 등의 아픔이 편지를 읽는 내 안에 쇠뭉치처럼 무겁게 자리 잡게 됐다. 분명 영화의 장면이 그런 부분과 연결되지 않았을까 한다. 일본인들은 그런 직간접 피해 체험을 적지 않게 갖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두 번째 이유는 피해자 의식이다. 자국에 불편한 것은 숨기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강조해 온 일본. 가해자라는 의식을 확실히 갖지 못한 것은 그런 교육 때문이 아닐까. 물론 일본이 ‘유일한 원자폭탄 피폭국’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거기에 이른 데는 과정이 있고 이유가 있다.
일본이 가해국이고 일본인은 가해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1984년 8월 6일 히로시마에서였다. 히로시마 시내에서 아시아 각국 대학생들이 행진했고, 그 후 한국인과 재일교포 학생들과 함께 한국인 피폭자 위령비에 기도를 올렸다. 당시 한국어를 몰랐고,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일본이 35년에 걸쳐 한국을 통치했다는 사실이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인식될 수 있었다.
또 1990년경 하와이 진주만국립기념관에 관광차 갔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는 계기가 된 진주만 공격은 일본에서는 찬란한 승리의 역사로 기억하고 그렇게 배웠다. 하지만 막상 가보고 나의 무지에 부끄러웠다. 일본은 ‘피해국’이기 이전에 ‘가해국’이었다.
영화를 두 번째 보니, 작품의 세계 정치와 과학 발전의 흐름 속에서, 또 원자폭탄을 만드는 입장에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영화는 원자폭탄 제조에 성공하는 과정에 대한 묘사와 오펜하이머가 겪는 고뇌와 아픔을 담아내고 있다. 나는 전반부는 여전히 대사를 놓치기 일쑤였으나 점점 작품에 몰입하게 됐고, 갈수록 집중도가 높아졌다. 그리고 그의 대사 “이제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됐다(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가 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동시에 천재 과학자가 기적처럼 이뤄낸 눈부신 성과가 초래한 참혹한 결과에 가슴이 아팠다.
이 작품이 올해 안에 일본에서도 공개될 것이다.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시점에서 일본인들의 관심사는 역시 이 작품에 히로시마, 나가사키 참상이 그려져 있는지 여부다. 두 도시의 지명은 여러 차례 등장하고 참상을 보는 장면도 나온다. 또 검게 탄 시체를 환상 속에서 밟아버리기도 한다. 단, 이런 묘사들은 아는 사람밖에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우선은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고, 그 후 비참한 피폭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일본은 ‘유일한 피폭국’이지만 ‘최후의 피폭국’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