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정부 대책 실효성 의문 예전에도 인권침해 이유 도입 못해… ‘다중장소 순찰 강화’ 등도 이미 나와 “묻지마 범죄 기준도 애매모호… 범죄 위험군 심층분석부터” 지적
정부가 최근 도심 한복판에서 ‘묻지 마 흉기 난동’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 것과 관련해 사법입원제와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 신설 등 범정부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과거에 발표했던 내용을 재탕하거나 부처별로 기존에 발표한 대책을 종합한 수준이어서 전문가들 사이에선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란 지적이 벌써부터 나온다.
● 절대적 종신형, 사법입원제 등 재탕 대책
이날 법무부는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을 추진하고, 판사가 중증 정신질환자의 입원을 판단하는 ‘사법입원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절대적 종신형’이라고 불리는 가석방 없는 무기형은 2004년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사개위)에서 도입 검토 방침을 밝힌 후 20년 가까이 논의됐으나 “사회로 다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없다 보니 교화 여지가 없어진다” 등의 이유로 도입되지 못한 제도다.
또 사법입원제 도입은 2019년 안인득 방화살인 사건 이후 법무부와 보건복지부에서 도입을 검토했으나 “정신 건강 전문가가 아닌 판사가 입원을 명령하는 게 안 맞고 인권 침해 요소가 있다”는 지적 때문에 진척되지 않았다.
이날 회의에서 경찰청은 다중밀집 장소에 경찰특공대 등을 배치하는 순찰을 강화하고 흉기 난동 범죄 발생 시 일선 경찰들의 면책권을 확대하며 총기·테이저건 사용을 늘리겠다고 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4일 대국민 담화에서 밝힌 내용인데 일선 경찰 사이에서도 흉악 범죄가 발생했을 때마다 나온 단골 대책을 반복한 수준이란 평가가 나온다.
● “묻지 마 범죄 분류 기준도 자의적”
2000년대 초반부터 동기가 불분명하거나, 대상을 가리지 않는 범죄가 반복되면서 언론 등에선 이를 ‘묻지 마 범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묻지 마 범죄가 정확히 어떤 범죄를 가리키는지에 대한 정부 내 합의가 없다 보니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는 상태다.
경찰은 지난해 1월 “묻지 마 범죄를 ‘이상동기 범죄’로 분류하고 경찰청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분석 및 통계 수집, 대응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1년 반 넘게 아무런 후속 발표를 안 하다 신림역, 서현역 사건이 발생한 이후 비판이 제기되자 이달 10일에야 “올 상반기(1∼6월) 18건이 이상동기 범죄로 분류됐다”는 자료를 냈다. 경찰 관계자는 “묻지 마 범죄의 기준이 여전히 자의적이어서 통계를 제대로 작성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처벌과 단속 대책만으로는 묻지 마 범죄를 근절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범죄심리학회장을 지낸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정부가 범죄 원인 및 동기에 대한 심층 분석 없이 형벌 강화 및 입원 조치만으로 범죄가 예방될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는 그룹에 대한 심층 분석이 먼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법무부는 ‘외로운 늑대’의 테러 124건을 연구한 후 종합 대책을 내놨다”며 “붙잡힌 범인들에 대한 깊이 있는 생애사 연구로 범죄 원인과 성향 등을 종합적으로 살핀 후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송유근 기자 big@donga.com
최원영 기자 o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