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생의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정부는 16일 다자녀 기준을 세 자녀 이상에서 두 자녀 이상으로 완화한다고 발표했다. 이미지 기자=image@donga.com
정부가 다자녀 혜택 기준을 세 자녀 이상에서 두 자녀 이상으로 통일하겠다고 발표한 16일, 몇몇 사람들로부터 이런 취지의 질문을 받았다. 그동안 기자와 같이 자녀 셋 이상인 가구만 누릴 수 있던 독점적 혜택을 이제 자녀가 둘뿐(!)인 가구와 나눠야 한다니,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냐는 이야기였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너그러워서가 아니라, 그런 생각이 들 만큼 기존에 대단한 걸 누리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 다자녀 혜택 대상 확대한다는데…
16일 정부는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다자녀 가구 지원 정책 추진 현황 및 개선 방향을 발표했다. 다자녀 가구의 기준은 중앙부처, 지자체, 교육청 통틀어 ‘두 자녀 이상’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주요 핵심 영역에서 두 자녀 이상 기준을 점차 확대, 반영해나갈 것이라 덧붙였다.특히 정부는 공공분양주택 다자녀 특별공급 혜택 대상을 두 자녀까지 확대하고 민영 주택도 완화할 수 있도록 검토할 것이라 밝혔다. 일명 ‘다자녀 특공’ 대상이 세 자녀 이상 가구에서 두 자녀 이상 가구로 바뀌는 것이다. 자동차 취득세 면제·감면 대상도 두 자녀 가구까지 확대한다. 이 밖에 문화시설 다자녀 기준 통일, 초등돌봄교실·아이돌봄서비스 등 추가 지원 계획 등이 발표됐다.
16일 열린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다자녀 특공 혜택은? 시도조차 못 해봤다. 무주택자여야 대상이 되는데, 작은 집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을 팔아 무주택자가 되면서까지 도전해볼 일은 아니었다. 아이 넷을 포함해 6인 가족이 살만한 집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혹시 혜택을 이용할 수 있을까 해서 알아보았지만, 특공에 나오는 집들은 그 넓이가 대부분 59~84㎡로 6인 가족이 살기에 턱없이 좁았다. 결국 있으나 마나 한 혜택이었다.
● 지금도 체감 어려운 다자녀 혜택
흔히 다자녀 가구라고 하면 정부에서 대단한 혜택을 받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실상 따져 보면 그렇지도 않다. 크게 체감할 수 없는 혜택이 많고 소득 기준과 같이 제한을 걸어둔 혜택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교육부 전경. 뉴시스
그런데 이런 혜택의 대상자를 더 확대한다고 한다. 아마 ‘기대할 만한 효과가 나타날까’ 하고 냉소적인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다자녀 가구만 혜택 준다고 볼멘소리했던 사람들도 이제 경험해보라지!’ 하고 외려 반기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 두 자녀 이상 57.6%…‘통큰’ 지원 불가
물론 수혜자가 아니거나 혜택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그 혜택이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다자녀 특공이나 대학 등록금 지원, 공공요금 할인을 요긴하게 이용한 가구도 많다. 이에 정부 발표에 분개하는 다자녀 가구도 적지 않다. 발표 다음 날인 17일 다자녀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정부에 대한 비판 의견이 줄을 잇고 있었다. 다자녀 가구의 육아 부담과 사회에 대한 기여도, 저출산 시대의 상징성 등을 도외시했다는 지탄이었다.자녀가 2명인 4인 가족이 놀이공원 안을 걷고 있다. 동아일보DB
이렇게 되면 과연 특공을 더 이상 ‘특별’한 혜택이라 칭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좋은 지역 주택에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몰릴 테고, 과거보다 훨씬 많은 다자녀 대상자가 몰리면 결국 그 안에서도 붙고 떨어지는 경쟁이 발생할 터다.
이는 비단 특공에서만 발생할 문제가 아니다. 대학 등록금 지원, 공공요금, 문화시설 이용료 감면도 앞으로 다자녀에 한해 ‘통 크게’ 지원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기엔 그 대상자가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 등록금처럼 많은 비용이 드는 지원 정책은 소득 기준을 강화해 대상을 축소하거나 지원범위를 줄여야 할 수도 있다.
정부도 16일 발표에서 “두 자녀 가구 수를 고려할 때 기계적인 요건 완화는 막대한 재정 소요가 불가피”하다며 “단계적·전략적 확대가 필요”할 것 같다고 밝혔다. 다자녀 대상을 야심 차게 확대해놓고, 정작 그 때문에 혜택은 조금씩 눈치를 봐가며 늘릴 수밖에 없다고 고백한 셈이다. ‘예산은 예산대로 들었는데, 개개인이 느끼는 효과는 미미했던’ 과거 저출산 정책의 실패를 답습할 것 같은 우려가 드는 지점이다.
동아일보DB
● “한 자녀만 ‘왕따’”…이분법 탈피 필요해
혜택에서 소외된 가구가 어떻게 느낄지도 따져 볼 문제다. 유치원생 아이 한 명을 키우는 지인은 이번 다자녀 가구 지원방안을 두고 “국가가 대놓고 한 자녀 가구를 ‘왕따’ 만든 느낌”이라며 “둘째를 갖게 할 만한 대단한 유인은 없고, 괜히 한 자녀 가구에 상대적 박탈감만 안긴 악수(惡手)”라고 비판했다. 아직 아이가 없는 또 다른 지인은 “하나 낳는 것도 엄두가 안 나는데 이제 하나는 혜택에서 소외된다니 ‘이렇게 된 거 낳지 말자’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 것 같다”고 전했다.물론 정부는 억울할 것이다. 다자녀 기준으로 모든 혜택을 나누는 것은 아니고 어떤 것은 보편적으로, 어떤 것은 더 세분화해서 적용하기도 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큰 틀이 다자녀와 비다자녀의 구분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세부 내용과 무관하게 이번 ‘다자녀 가구 지원 정책’이 사회적으로 던진 메시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정책은 아이를 키우는 가구 간에 선을 그었다. 기존 다자녀 가구는 물론 새롭게 비다자녀 가구가 된 한 자녀 가구에 박탈감을 안겨줬다. 머지않아 두 자녀 가구에는 허망함을 안길 것이다. 실질적인 득이 크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될 테니.
언제까지 다자녀와 비다자녀로 나눠야 할까. 우리가 전범으로 삼는 저출산 극복 국가들은 대부분 아이 수 혹은 가구 상황에 따른 차등적 혜택을 제공하지, 다자녀이냐 아니냐로 혜택을 나누지 않는다. 어설픈 이분법 복지는 수혜를 입는 쪽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소외된 축에는 반감만 안긴다. 기존에 기관, 지자체별로 그 사정에 맞게 다양한 기준과 혜택을 구사하도록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이번 다자녀 기준 완화가 고깝진 않지만, 아쉽고 안타까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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