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나베 前 아사히신문 기자 100주년 해에 진상 밝힌 책 내 “일본 우익 정당방위론 성립 안돼”
신간 ‘관동대지진, 학살 부정의 진상’을 펴낸 와타나베 노부유키 전 아사히신문 역사전문기자(왼쪽)가 18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번역을 맡은 이규수 전북대 고려인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뉴시스
“간토(關東)대지진 직후 통신과 교통이 모두 단절된 환경에서 제작된 오보가 오늘날 간토대지진 학살부정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사실이 아닌 가짜뉴스가 긴 시간 동안 정정되지 못한 채 방치돼 있었던 탓입니다.”
최근 신간 ‘관동대지진, 학살 부정의 진상’(삼인)을 펴낸 전 아사히신문 역사전문기자 와타나베 노부유키 씨(68)가 18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올해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이 벌어진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1923년 9월 1일 간토대지진 직후 요코하마 등지에서 ‘무장한 조선인들이 방화를 하고 폭동을 일으킨다’는 유언비어가 퍼져 나가며 전국적으로 조직된 3689개 일본인 자경단에 의한 조선인 학살이 벌어졌다. 당시 살해된 조선인은 약 6000명에서 1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와타나베 씨는 아사히신문 사사(社史)를 토대로 이 기사가 쓰인 과정을 역추적했다. 그 결과 지진 발생 직후 오사카 현장으로 급파된 기자들은 4일 무렵 현장에 도착했고, 감청 정보의 팩트 체크를 충분히 하지 못한 채 당일 기사를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와타나베 씨는 “당시 보도된 기사는 확인되지 않은 오보였다”며 “‘조선인 학살 사건은 봉기를 일으킨 조선인으로부터 일본인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정당방위’란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간토대지진 직후 내무대신을 지낸 고토 신페이(後藤新平)가 1923년 11월 15일 조사를 토대로 남긴 ‘지진 후 형사사범 관련 사항 조사서’에 따르면 간토대지진 직후 조선인이 저지른 살상 사건은 5건으로 기록돼 있으나 피의자와 피해자 신원 모두 미상으로 확인됐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