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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영재 부모들, 학교 찾아오지도 않고 전화도 안 해”[파워인터뷰]

입력 | 2023-08-20 23:39:00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지난해 8월 국내에서 ‘K클래식 제너레이션’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됐다. 영화는 “국제 주요 음악 경연에서 한국인의 우승은 최근에 거의 당연해졌다. 지난 20년간 700명이 결선에 올랐고, 그중 110명이 우승을 차지했다. 이렇게 빨리 정상급에 오른 비결과 그 간절한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영화감독은 20년이 넘게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를 현장 중계해온 벨기에 공영방송(RTBF) 음악감독인 티에리 로로.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61)은 서울 성북구 한예종에서 1일 가진 인터뷰에서 “궁금한 게 당연한데 사실 딱 이것 때문이라고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한예종은 임윤찬(2022년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최연소 우승), 문지영(2015년 부소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위), 임지영(2015년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 1위·바이올린) 등을 배출한 명실상부한 K클래식의 산실이다.》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은 “요즘 학교교육 문제가 심각한데, 핵심은 가정교육”이라며 “정말 크게 성장한 아이들을 보면 부모가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바라보거나 아예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요즘 학부모의 과도한 교권 침해가 사회문제다. 2021년 총장 취임 일성이 ‘치맛바람 사절’이었다.

“1994년 (교수) 부임했을 때는 그런 게 많았다. 그래서 학부모들과 엄청나게 싸우기도 했다. 그렇게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아예 ‘내가 연락하기 전에는 (학부모를)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이게 참 그런데…. 학생에게 문제가 발견돼 부모를 만나 보면 왜 그런 문제가 생겼는지 알겠더라. 학생이 가진 문제를 그 부모가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부모가 더한 경우도 있고.”

―학생이 가진 문제를 부모가 갖고 있는 경우는 어떤 사례가 있나.

“예를 들어 욕망이나 욕심이 굉장히 지나친 아이들이 있다. 그런 경우에는 집에서 부모님들이 콩쿠르에서 떨어져도 좀 다독이고 안심시켜 줘야 하는데 만나 보면 부모님이 더 하더라. (손)열음이 어머니가 그런 말을 했다. ‘엄마가 너무 앞서 나가면 자식이 엄마처럼 된다’고. 나는 그 말이 참 명언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영재들 부모는 학교 찾아와서 이러쿵저러쿵 안 한다. 일절 연락하지 않는다.”

―예체능계는 다른 분야보다 부모가 신경을 훨씬 더 많이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선욱이 영국 유학 간 뒤였는데, 선욱이 어머니에게 전화가 온 적이 있다. 혹시 아들 영국 휴대전화 번호 아시냐고…. 정말 크게 성장한 아이들을 보면 부모가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바라보거나 아예 무관심하다. 요즘 학교교육 문제가 심각한데, 나는 핵심은 가정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교육학자가 한 말인데, 학교에서 교사를 때리는 학생은 집에서 부모도 때릴 거라는 거다. 그럴 확률이 높다고. (아이도) 부모가 하는 걸 보고 자랐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싶다.”

―영재 교육에 관심이 많은데 영재가 뭔가.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걸 말하나.

“그런 아이들도 있는데, 임윤찬 같은 경우는 어렸을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경우는 아니었다. 평범했다. 국내 삼익·자일러 콩쿠르에서 떨어진 적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후에 스승인 손민수 교수(한예종)를 만나면서 안에 숨어 있던 뭔가가 ‘빵’ 터지면서 발현된 거다. 윤찬이의 어린 시절을 아는 사람들은 ‘아 저런 게 있던 아이였구나. 재능이란 게 늦게 발현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나라 음악가가 K클래식이라고 불릴 정도로 콩쿠르에 강한 이유가 뭔가.

“하하하. 앞서 말한 대로 여러 가지가 작용한 결과겠지만…. 우리 학교의 경우 ‘위클리(weekly)’라는 실습 수업 시간이 있다. 학생 중 한 명이 연주하면 다른 학생들이 그 자리에서 바로 평가하고 지적하는데, 이게 평상시에도 무대 연습을 엄청나게 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공연예술은 정해진 시간에 단 한 번으로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 면에서 얼마나 많은 무대 경험을 갖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을 해보면 당일 연주보다 훨씬 더 많은 잠재력을 가진 참가자를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점수는 잠재력보다 현장에서 더 잘한 사람에게 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외국 기자들에게는 차마 말을 못 했는데…. 선생님의 헌신이 필요하다.”

―교수의 헌신이라는 게 무슨 의미인가.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려면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레슨으로는 턱도 없다. 치는 곡만 10여 곡인데…. 매일 또는 이틀에 한 번씩 추가로 레슨을 하는데, 한 번 하면 3∼4시간 이상 걸리기 일쑤다.”

―외국 교수들은 그렇게 안 해주나.

“그게 우리와의 차이다. 외국에서는 기본적으로 출전하는 학생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문화여서 정해진 수업 시간 안에서만 도와준다.”

―외국 기자들에게는 왜 이 말을 못 한 건가.

“왠지 외국 선생님들을 안 좋게 말하는 것 같아서….”

―‘K클래식 제너레이션’을 만든 로로 감독은 ‘자유’를 그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연주에서 ‘자유’가 뭔가.

“10여 년 전만 해도 정형화된 연주를 좋은 것으로 여겼다. 그런 연주가 좋은 결과를 얻기도 했고. 그런데 요즘은 다음 부분에서 어떻게 칠지 예측이 되고, 또 그대로 되면 재미없는 연주로 친다. 세계적인 추세가 ‘자, 뻔하게 연주하지 말고 나를 좀 놀라게 해봐’ 이런 식으로 변하고 있다. 그걸 개성이라고 해도 좋고, 창의성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래서 나도 한동안은 ‘지금까지 몇십 년 동안 가르친 게 그럼 다 잘못 교육한 건가?’ 하는 회의에도 빠졌다.”

―자유나 개성, 창의성을 어떻게 가르치나.

“그건 스스로 키우는 것이지 누가 가르칠 수 있는 영역은 아닌 것 같다. 단, 학생이 그런 능력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책을 많이 읽으라는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다. 개성은 악기 연습으로 길러지는 게 아니니까.”

―임윤찬이 리스트의 피아노 연작 ‘순례의 해’ 중 ‘단테 소나타’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 단테의 ‘신곡’을 읽은 것도 그런 차원일까.


“신곡은 굉장히 어려운 책이다. 윤찬이가 정말 그 내용을 다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곡을 연주하기 위해 그 정도로 스스로 고민하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누가 시킨 게 아니지 않나. 그 과정에서 분명히 여러 가지 다른 생각과 감정이 떠오르고 자기만의 곡 해석이 생긴다. 악보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 기계적으로 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연주에 고민을 해야 한다.”

―연주에 고민을 한다는 게 무슨 말인가.

“자신이 미치도록 좋은 부분이 있다면 좋다는 걸 느끼는 걸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 멜로디가 왜 좋은지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인문학적, 철학적 접근도 필요한 거고. 자기만의 감정과 해석에 따른 연주. 그게 심사위원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어떻게 연주할지 뻔히 예상되는 연주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나도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 박사 면접에서 곡의 사상적 배경을 묻는데 제대로 대답을 못 해서 떨어졌다.”

―시험 준비를 많이 못 한 건가.


“그전에는 실기만 봤는데, 그해(1986년) 새로 부임한 교장이 ‘박사를 실기로만 뽑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처음으로 면접 인터뷰를 추가하고 자신이 직접 질문했다. 요즘 뭘 치고 있냐고 묻기에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라고 했더니 ‘마침 잘됐다’면서 곡에 깔린 시대적 사상을 30분 동안 얘기해 보라고 하더라. 30분은 고사하고 아는 게 없어서 3분도 채 못 했다. 그래서 그 다음 해에 들어갔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직접 도전해봤을 텐데….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떨어졌고…, 리즈(국제 피아노 콩쿠르)도 1차에서 떨어졌고….”

―줄리아드 음악원 출신인데….


“임윤찬, 조성진은 피아노가 아예 자기 몸의 일부다. 피아노를 갖고 자유자재로 논다고 할까.”

―콩쿠르 출전자들은 대개 그렇지 않나.

“말로 설명하긴 참 어려운데…. 다들 실수도 하나 없고 어려운 부분도 잘하긴 한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뭔가 연주자와 피아노가 한 몸으로 느껴지는 아이들이 있다. 내게는 그 정도의 재능은 없었다.”

―우리가 콩쿠르 강국은 맞는데, 클래식 강국은 아니라고 한다.

“국제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가 보면 한국은 좀 왕따 취급을 받는다. 와서 상만 타가고 아무것도 기여하지 않는다고.”

―기여한다는 게 무슨 말인가.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서 우리 출전자가 우승하면 대서특필되고 연주가 줄을 잇는다. 그런데 외국 참가자가 우승하면 우리는 관심 밖이다. 국내 초청 연주도 거의 없다. 일본은 자기네 본선 진출자가 없는 콩쿠르라도 자국 심사위원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주재국 대사관에서 심사위원 전원 초청 만찬을 열어준다. 콩쿠르 후원도 하고. 우리는 그런 게 없다. 그러니 그쪽에서 보기에 한국은 잘하기는 하는데 상만 타갈 뿐 아무것도 교류하지 않는 나라라는 인식이 있다. 국제 콩쿠르를 통해 훌륭한 연주자들을 많이 배출한 만큼 우리도 세계 음악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1962년생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 졸업, 동 대학원 박사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 클리블랜드 국제 콩쿠르 등 심사위원
△한예종 한국예술영재교육원장, 한예종 음악원장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