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가까이 불타고 있는 하와이는 ‘X의 섬’이 됐다. 8일 새벽 미국 하와이주 마우이섬에서 시작된 산불 3개가 휩쓸고 간 마을들을 소방·구조대원 수백 명이 수색하고 있다. 수색을 마친 주택과 건물 벽에 주황색 스프레이로 X 표시를 하나씩 하고 있다. 그 X 표시가 2000개를 넘어서 마을을 뒤덮었다. 20일 현재 사망자는 114명이다.
▷하와이주는 1인당 소득이 5만 달러를 넘는다. 하나의 국가로 간주한다면 독일과 네덜란드 사이쯤 되는 부국(富國)이다. 그런 곳에서 목격된 산불 초기 대응을 보면 미스터리(X)가 하나둘이 아니다. 제주도 크기인 마우이섬은 상주 인구 16만 명에, 고급 리조트를 찾는 관광객이 넘치는 휴양지다. 소방대원은 모두 65명. 소방차가 13대, 사다리차는 2대뿐이었다. 소화전 수압이 낮아 초기 진화에 애를 먹었다고 했다. ‘여기가 미국이 맞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화재 직후 대피 사이렌도 울리지 않아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 악몽 이후 옥외 사이렌을 설치해 왔고, 지금은 80개나 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마우이섬 재난·방재 책임자는 “사이렌을 울렸다간 쓰나미 경보로 오인한 주민들이 (불이 난) 산 쪽으로 피할까 걱정해 그랬다”고 말했다가 하루 만에 물러났다. 홈페이지에는 “산불과 쓰나미를 위해 사이렌을 가동한다”고 적혀 있었다. 산불과의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꾼 것도, 사흘이 지난 지금까지 후임자 지명을 않는 것도 재난대응의 ABC가 맞는지 의문이다.
▷하와이는 탄식의 섬이 됐다. 휴대전화가 되살아나면서 연락이 닿아 실종자가 줄었다지만 여전히 1000∼1200명이나 된다. 불에 탄 시체도 신원 확인에 애를 먹고 있다. 통상 치아나 지문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지만 치과 진료 기록도 불탔고, 시신 훼손이 심해 지문 채취도 어렵다고 한다. 현지에선 불에 탄 마우이를 두고 “9·11테러 직후 같다”고, 잿더미 때문에 “흑백사진 같다”고 말한다. 마우이섬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 마음도 새까맣게 탔을 것이다. 지금 그곳에는 우리가 아는 하와이는 없다. 자연이 만들고 인재(人災)가 키운 재난이 이렇게 무섭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