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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대동지지에 장시 기록… 조선 변화 알아본 선각자”

입력 | 2023-08-21 03:00:00

김정호의 ‘대동지지’ 국내 최초 국역한 이상태 한국영토학회장
대동여지도 제작후 집필한 유작
팔도 돌아다니며 상업 발달 목격… 자신의 동여도지-여도비지에 없는
전국 장날인 ‘장시’ 정보 기록… 외세 바람-상업적 열망 엿보여



이상태 한국영토학회장이 18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대학원 도서관에서 김정호의 육필본 ‘대동지지’와 국역본을 들어 보였다. 대동지지엔 전국 각지의 장날 정보 등 사회 변화상이 담겼다. 이 회장은 “김정호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였던 학자”라고 강조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김정호가 자신의 연구와 앞서 존재한 수많은 지리서를 종합해 만든 대동지지(大東地志)는 한민족 지도문화의 총화입니다.”

조선의 지리학자 고산자(古山子) 김정호(1804?∼1866?)가 집필한 지리서 ‘대동지지’를 최근 처음으로 국역한 이상태 한국영토학회 회장(80)은 18일 이렇게 강조했다. 이 회장은 30권 15책 분량에 달하는 원본을 총 8권 2170쪽으로 옮긴 ‘대동지지’(경인문화사)를 최근 출간했다. 국역에는 이 회장을 비롯해 고혜령 전 국사편찬위원회 편사부장, 이영춘 전 국사편찬위원회 연구편찬실장 등 학자 8명이 참여했다. 대동지지는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직후인 1862년부터 죽을 때까지 집필한 유작이다.

대동지지 김정호 육필본을 소장하고 있는 서울 성북구 고려대 대학원 도서관에서 만난 이 회장은 “김정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동지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동지지엔 김정호가 앞서 편찬한 ‘동여도지(東輿圖志)’와 ‘여도비지(輿圖備志)’에는 없는 정보가 기록돼 있다. 바로 전국의 장날을 기록한 ‘장시(場市)’다. 강원도 편에서 원주목에 대해 설명하며 ‘읍내 장날은 2일과 7일’이라고 기록하는 식이다. 이 회장은 “김정호는 팔도를 돌아다니며 상업의 발달 과정을 목격했다. 백성이 무슨 정보를 원하는지 명확히 포착했고 그것이 바로 장시”라고 했다. 당대 지리서 가운데 장시 정보를 기록한 건 대동지지뿐이다.

조선에 닥친 외세의 흔적도 엿볼 수 있다. 충청도 편에선 ‘홍주목’(현재 충남 홍성)을 설명하는 대목에 “순조 32년 7월에 서양의 상선 호하미 등이 고대도에 도착하여 그 지방의 토산물을 헌납하였다. … 그 나라는 대영국(大英國)이라 칭하고 … 그 나라 서울의 지명이 란돈(蘭墩)…”이라고 나온다. 그해(1832년)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 상선 애머스트호가 고대도에 들어온 것을 기록한 것이다. 이 회장은 “대동지지에는 조선을 향해 불어오는 외세의 바람과 당대 백성들의 높아진 상업적 열망 등 격변하는 사회상이 그대로 기록돼 있다”며 “김정호는 19세기 조선에 불어닥친 변화를 알아본 선각자였다”고 말했다.

50년 넘게 김정호를 연구해온 이 회장은 “김정호를 둘러싼 전설적인 이야기들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어 고지도 연구를 시작했다”고 했다. 일본의 측량가 이노 다다타카(伊能忠敬·1745∼1818)에 맞설 만한 인물을 내세우기 위해 김정호가 신화화된 측면이 있다는 것. 그는 “흔히 김정호가 일일이 측량해서 지도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측량과 함께 역대 한반도에서 제작된 지도와 지리서를 총합한 편집지도를 제작했다”며 “김정호는 새로운 지도를 만들어낸 창조자가 아니라 한민족의 역대 지도 문화를 계승한 학자”라고 평했다.

김정호가 위대한 이유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지녔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김정호가 1851∼1856년 편찬한 여도비지에는 전국 334개 군현의 모든 좌표가 기록돼 있다. 위도는 현재의 것과 같고, 경도는 북경을 기준으로 한 좌표다. 당대 조선에 유입된 서구의 기하학과 확대축소법을 토대로 과학적으로 한 단계 더 발전한 지리서를 집필한 성과라는 분석이다. 이 회장은 현존하는 ‘대동여지도 목판본’ 30여 점을 비교하면서 김정호가 기존에 잘못 새겼거나 새로 바뀐 부분을 수정한 흔적 30여 군데를 찾아내기도 했다. “김정호는 언제고 고치는 학자였습니다. 그는 세상이 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