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상태 데이터 조기 확인해 신속대처 가능" "진료 행위는 병원내 이뤄져 비대면진료 아냐" "국내 도입 의료법 제한·정부 유권해석에 막혀"
국내에서 인공 심장박동기·이식형 심율동 전환 제세동기 같은 의료기기를 심장에 이식한 부정맥 환자를 대상으로 ‘원격 모니터링’을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목소리가 학계에서 나왔다.
의료인이 환자와 떨어진 곳에서 환자의 심장에 이식한 의료기기가 보내오는 데이터와 신호를 조기에 확인해 필요한 조치를 신속히 내리면 생명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유다.
21일 대한부정맥학회에 따르면 이 단체는 지난 16일 오후 서울역 인근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현행 의료법의 한계로 아직 국내에서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심장 내 삽입장치(CIED) 이식 부정맥 환자에 대한 원격 모니터링의 필요성을 밝혔다.
노태호 가톨릭의대 성바오로병원 명예교수(부정맥연구회 전 회장)는 “환자들이 몇 개월치 이력을 모아 한꺼번에 진단받는 구조다 보니 제때 심장의 이상신호들을 알아차리기 어렵다”면서 “만일 원격 모니터링으로 A라는 환자에서 사망 전날 저녁 발생해 10분 간 지속된 심한 서맥(심장이 느리게 뛰는 것)을 경고로 받아들이고 일찍 조치에 나섰다면 환자의 생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심장 내 삽입장치 이식 부정맥 환자를 대상으로 원격 모니터링이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 환자의 심장 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술은 충분하지만, 의료인과 환자 간 원격진료를 금지하고 있는 의료법과 정부의 유권해석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은 환자가 내원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가 건강 상태와 관련된 데이터를 확인하고 의료적 상담을 제공하는 행위로 의료법이 정의하는 의료인과 환자 간 ‘원격진료’에 해당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학회는 “원격 모니터링은 원격 진료(비대면 진료)와 결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명용 대한부정맥학회 회장(단국대병원장)은 “원격 진료를 허용해 달라는 얘기가 아니다”면서 “심장에 의료기기를 이식한 부정맥 환자들에 대한 모니터링 데이터를 확인할 수만 있다면 환자들을 더 많이 살릴 수 있으니 법적 제한을 풀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10건 이상의 무작위대조임상(임상시험 참여자를 무작위로 치료군과 대조군으로 나눠 수행하는 시험)을 통해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의 효과와 안전성 등이 이미 입증됐다. 심각한 부정맥 발생을 보다 일찍 발견하고, 부적절한 심장 충격을 줄일 수 있었다. 미국심장부정맥학회(HRS)는 지난 2015년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에 대한 필수 사용 권고 의견을 냈다.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은 해외에선 이미 표준치료로 자리잡은 상태다. 미국 등 서구는 물론이고 일본, 홍콩, 싱가포르, 대만, 중국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도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이 진료의 표준으로 권고되고 있다.
또 원격 모니터링은 환자의 불필요한 내원, 기기 교체 등을 줄여 비용 대비 효과적이라는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고 학회는 강조했다. 김 보험이사는 “환자와 보호자가 먼 곳에 있는 병원을 찾아가기까지 발생하는 비용보다 의료인이 온라인으로 데이터를 받아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환자에게 빨리 가까운 병원을 가라고 할 수 있는 원격 모니터링이 비용 대비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복지부는 의료기기를 통한 심장건강 관리 서비스에 대해 적극적인 유권 해석을 통해 시장 진입의 길을 열어줬다. 정보통신기술(ICT) 규제 샌드박스 1호 실증특례로 선정된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활용한 심장관리 서비스’가 한 예다. 또 정부는 이미 산업계와 함께 ‘강원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 자유특구’의 ‘건강관리 생체신호 모니터링’ 실증사업을 통해 원격 모니터링의 기술적 가능성과 안전성을 검증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