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단체 그린피스 활동가가 영국 런던 랜드마크인 시계탑 빅벤에 올라 ‘기후를 살리려면 정치를 바꾸자’는 대형 깃발을 휘두르며 기회변화 대응 촉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사진은 그린피스 영국 지부가 10일 소셜미디어 X에 공개했다.
영국과 미국 등에서 기후변화 정책을 두고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격화되며 ‘기후 문화전쟁’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진보 시민단체들은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시위 강도를 높이는 반면 보수 성향의 정부나 정치인들은 정책 속도를 늦추거나 추진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좌파의 기후위기 주장은 사기”라는 가짜뉴스가 온라인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내년에 총선과 대선이 예정된 영국과 미국에서는 탄소중립 정책이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첨예한 이슈로 떠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탄소중립 정책, 보수-진보 선명히 갈라”
유럽 전문 매체인 유로뉴스는 영국 등이 ‘녹색 공약’ 철회를 검토하면서 기후변화 문제를 두고 정치적 대립이 커지는 ‘기후 문화전쟁’이 본격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고 20일 보도했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최근 언론과 정치인들의 소셜미디어에는 ‘기후 문화전쟁’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과거에는 기후변화 정책에 주로 반발하는 집단은 환경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기업들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고물가와 경기 침체 속에 친환경 정책이 경제에 부담을 준다는 우파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보수당이 집권한 영국에선 탄소 배출의 주범으로 지목된 석유와 가스 사업을 확대하고 ‘녹색 공약’을 폐기하려는 조짐이 일고 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북해 석유·가스 사업권 100여 건을 승인할 계획이라고 영국 BBC 등이 지난달 31일 보도했다.
수낵 내각이 이런 기류를 보이는 이유는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 수급이 불안해지며 ‘에너지 안보’가 중대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수낵 총리는 “2050년 탄소중립이 되더라도 에너지원의 4분의 1 이상이 여전히 석유와 가스일 것”이라며 “그렇다면 국내에서 생산된 에너지를 쓰는 게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보다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경제가 어려워지며 탄소중립 정책이 서민에게 부담을 준다는 일부 여론에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보수당은 최근 보궐선거에서 ‘초저배출구역(ULEZ)’ 확대 적용에 대한 우려를 부각해 ‘깜짝 승리’를 거뒀다. ULEZ는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노후 차량에 요금을 부과하는 정책이다. 탄소중립은 내년으로 예상되는 총선을 앞두고 집권 보수당과 야당을 가르는 선명한 선이 됐다고 로이터통신은 분석했다.
● 美 공화당 집권 시 탄소억제 규정 폐기할 듯
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에선 공화당이 집권하면 기후변화 정책이 뒤집힐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이 주도적으로 마련한 공화당 집권 시 첫 180일간의 시나리오인 ‘프로젝트 2025’ 등을 근거로 기후·에너지 정책이 가장 심각한 변화를 맞게 될 것이라고 7일 보도했다. 이 시나리오는 자동차, 유정(油井) 및 가스정, 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억제하는 규정을 폐기한다는 방침을 담고 있다. 유럽연합(EU)도 일부 회원국의 우경화로 기후변화 정책이 후퇴하고 있다. 프란스 티머만스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일부에서 기후정책을 문화전쟁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며 “EU의 녹색 정책이 회원국의 정치적 분열로 마비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이미 네덜란드에선 신생 정당인 ‘농민-시민운동당(BBB)’이 “정부의 기후 위기론은 과장”이라고 주장해 지지를 받았고 올 3월 총선에서 상원 제1당이 되는 돌풍을 일으켰다.
기후변화 위기는 “세기의 사기” “탄소 사기”라는 거짓뉴스까지 퍼지고 있다. 멜리사 플레밍 유엔 커뮤니케이션 수석은 지난해 5월 유엔 관련 매체 ‘위더피플스’에서 “기후변화 관련 허위정보 생산자들의 전술이 점차 더 교묘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NYT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도 7일 칼럼을 통해 “기후전쟁이 문화전쟁이 돼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