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자동차세 개편 목소리
미국 테슬라의 준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X. 테슬라 제공
현대자동차의 준중형 세단 ‘더 뉴 아반떼’. 현대자동차 제공
한재희 산업1부 기자
《현대자동차의 내연기관차인 아반떼 1.6 가솔린(약 1600cc) 차량 소유자가 내는 자동차세는 연간 22만 원이다. 이 차량의 가격은 2000만 원대. 하지만 약 1억5000만 원에 달하는 미국 테슬라의 전기차인 모델X 차량 소유자가 내는 자동차세는 연간 10만 원이다. 차량 가격은 아반떼의 7배에 달하지만 자동차세는 절반 이하인 것이다.
현재 배기량 기준으로 부과되는 자동차세의 적절성을 두고 자동차 소유자 사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달 1∼21일 대통령실에서 ‘자동차세 등 배기량 중심의 자동차 재산 기준 개선’을 주제로 국민참여토론을 진행하며 개정 논의는 더욱 활발해졌다.
개정을 찬성하는 측은 자동차 가격이 아닌 배기량을 기준으로 부과되는 자동차세가 불공정을 유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자동차세를 개편해 전기차에 대한 과세를 높이는 것이 ‘친환경차 보급 정책’에 반하는 것이란 반대 주장도 만만찮다. 전기료 인상에 따라 충전 비용이 증가하고, 전기차 구매 보조금도 매년 줄어드는 추세인데 자동차세마저 오르면 전기차 매력도가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기차 시대에는 안 맞는 배기량 기준
하지만 엔진이 아닌 모터를 활용해 움직이는 전기차의 보급이 늘면서 기존 세금 부과 방식의 합리성을 두고 이견이 생기기 시작했다. 엔진에는 실린더 피스톤의 1회 운동으로 밀어내는 기체의 부피를 의미하는 배기량이란 개념이 존재하지만 모터는 그렇지 않다. 자석의 밀고 당기는 힘을 이용해 모터가 고속으로 회전하며 전기차를 움직이기 때문에 엔진과는 구조가 다르다.
결국 배기량의 개념이 없는 전기차는 지방세법에서 ‘그 밖의 승용차’로 분류해 따로 과세를 하고 있다. 비영업용 전기차의 경우에는 차 가격에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연간 10만 원씩 자동차세가 부과되는 방식이다.
전기차라고 하더라도 4000만∼5000만 원대의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부터 트림에 따라 2억 원대에 달하는 포르셰 타이칸까지 차량 가액은 천차만별이다. 그럼에도 모든 차량에 10만 원이라는 단일 세제가 적용되고 있어 자산에 대해 세금을 매기는 자동차세의 특성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차는 배기가스 배출이 없어 내연기관차에 비해 친환경적이지만 환경 오염을 아예 유발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전기차 배터리 원료를 구하기 위해 여러 광석을 채굴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탄소가 배출되고, 전기차를 운전할 때에도 바퀴에서 미세먼지가 발생한다. 환경부담금 측면에서 전기차에 자동차세가 제대로 부과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전기차주들 “친환경차 보급에 저해될 것”
반면 전기차주들은 자동차세 개편이 전기차 보급을 가로막는 요소가 될 수 있는 만큼 개정 논의가 신중히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동차세 개편이 한풀 꺾인 전기차 보급률 상승세를 더 끌어내릴 수 있다는 우려다. 지난해 상반기(1∼6월) 국내 친환경차(하이브리드, 전기차, 수소차 등) 신차 등록 중 전기차의 점유율은 32.4%였는데 올 상반기에는 29.9%로 줄었다. 반면 하이브리드 비중은 지난해 상반기 61.8%에서 올 상반기 66.8%로 높아졌다. 2020년 최대 820만 원이었던 전기차 국고보조금이 올해 최대 680만 원으로 줄고, 지난해 7월 한국전력의 전기차 충전요금 할인 특례가 끝나는 등 전기차에 제공됐던 혜택이 줄어든 영향이 크다.
차량 가액을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부과하면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 전기차에는 고전압 배터리가 장착돼 있어 일반적으로 내연기관차보다 값이 나가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에 출시된 2세대 코나의 경우에는 가솔린 모델이 2468만∼3097만 원으로 책정됐는데, 전기차 모델의 가격은 4752만∼5092만 원이다. 전기차 가격의 약 40%를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이 떨어져야 내연기관차와의 가격 격차가 좁혀질 수 있다. 배터리 회사마다 저렴하면서도 효율이 좋은 제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지만 실제 전기차에 장착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희구 한국전기차사용자협회 이사는 “환경을 생각해 여러 가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전기차를 타는 사람들도 있다”며 “친환경적인 차량에 더 많은 혜택을 주는 정부의 정책 방향이 흔들리지 않고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속도 조절을 하되 “바꾸긴 바꿔야” 주장도
만약 자동차세를 개편하려 하더라도 넘어야 할 큰 산이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을 위반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협정문에는 ‘대한민국은 차종 간 세율의 차이를 확대하기 위해 차량 배기량에 기초한 새로운 조세를 채택하거나 기존의 조세를 수정할 수 없다’고 돼 있다. 배기량 기준으로 돼 있는 현행 자동차세를 수정하려면 한미 FTA 재협상이 필요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만약 한미 FTA를 개정하려면 양국 협상에다가 국회 비준동의안 통과 등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반면 한미 FTA의 해당 조항에 위배되지 않게끔 기술적으로 자동차세를 수정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김필헌 한국지방세연구원 지방세연구실장은 “한미 FTA의 해당 조항은 미국 차량에 불리한 형태로 자동차세가 변하면 안 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고 했다. 이어 “이를 고려할 때 차종 사이에 세율 차이를 확대하지 않는 방식으로 개정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이것마저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과세 자주권이 무시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세 전문가들 사이에선 친환경차 보급을 막지 않는 방향으로 속도를 조절하더라도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에서 2030년까지 전기차 420만 대 보급을 목표로 내건 만큼 지난달 기준 48만 대에 불과한 전기차 수는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자동차세가 10만 원에 머문다면 세수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지선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세금이라는 것도 세상이 변하는 것에 맞춰 바뀌어야 한다”며 “재산세적 측면인 차 가격에다가 환경세 측면인 연료소비효율이나 탄소 배출량 등을 함께 고려해 새 기준을 만들자는 요구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재희 산업1부 기자 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