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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대학로서 흉기 들고 괴성 60대…1015명이 선처 탄원 왜?

입력 | 2023-08-22 06:50:00

사진=혜화경찰서 제공


한밤 서울 도심에서 흉기를 들고 괴성을 지른 60대 남성을 선처해달라며 시민 1015명이 탄원서를 제출했다.

앞서 지난 18일 서울 혜화경찰서는 한밤 서울 도심에서 흉기를 들고 괴성을 지른 60대 남성 A 씨를 폭력행위처벌법을 적용해 체포하고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A 씨는 17일 오후 9시 25분경 길이 20㎝가 넘는 회칼을 들고 서울 종로구 성균어학원 별관 인근 도로를 돌아다닌 혐의를 받는다.

당시 “칼을 든 남자가 괴성을 지른다”는 등 관련 112 신고가 3건이나 접수됐고, 경찰은 CCTV를 분석해 1시간 만인 오후 10시 25분경 종로구 집에 있던 A 씨를 긴급체포했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집에서 동영상을 보는데 밖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 홧김에 다 죽이려고 칼을 가지고 나갔다”고 진술했다.

이날 A 씨는 흉기로 남을 위협하거나 해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웃 주민들은 경찰에 그가 평소에도 괴성을 질러 불안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A 씨의 흉기 소지가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경범죄처벌법이 아닌 폭력행위처벌법을 적용해 구속영장도 신청했다.

서울중앙지법 김봉규 부장판사는 지난 19일 영장실질심사를 한 뒤 “도망의 염려와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을 고려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러나 영장 심사 과정에서 A 씨를 선처해달라면서 탄원서를 제출한 시민들이 무려 1015명이나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2002년 길거리에서 노숙하던 A 씨를 발견한 뒤 20년 이상 A 씨의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는 시민단체 ‘홈리스행동’에 따르면 A 씨는 부산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감됐던 피해자다. 형제복지원은 지난해 8월 진실화해위원회가 국가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했다고 밝힌 곳이다.

A 씨는 이곳에서 강제노동과 폭행 등 피해를 당하다가 겨우 탈출했다고 한다. 지난해 이러한 피해 사실을 진실화해위에 진술해 국가폭력의 피해자임을 공식 인정받았다.

홈리스행동에 따르면 A 씨는 장애등급제 폐지 이전에 2급 지적장애 판정을 받은 중증 발달장애인이다. 지능지수는 35~49 정도에, 정신연령도 3~7세 수준이라고 한다. 글을 읽고 쓸 줄 모르기 때문에 소리 지르기로 의사를 표현해왔다고 한다.

이웃 주민들은 경찰에 그가 평소에도 괴성을 질러 불안했다고 전했는데 이는 A 씨에겐 의사 표현이고 누군가를 해치려는 건 아니라는 게 단체 측 설명이다. 또 뇌경색과 급성신부전 등 질환이 있어서 물리적으로 타인을 해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의 불우한 사연이 흉기를 소지하고 위협적인 행동을 한 것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지만 이들이 탄원서를 작성한 취지는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이 가질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한계와 상황도 고려해달라는 것이다.

20일 경찰서에 수감 된 A 씨를 만나러 간 이들은 A 씨가 먹고 싶은 음식을 말했다며 “자신이 현재 처해있는 상황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1차원적 요구만을 말하고 있는 상태였다”고 했다.

홈리스행동은 전문의와 A 씨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를 할 계획이며 A 씨가 현재 거주 중인 임대주택의 이웃 주민들과도 만나 A 씨의 건강 상태와 상황을 알리고 ‘불편한 일이 생기면 단체로 연락하라’고 알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송치훈 동아닷컴 기자 sch5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