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강섭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이 21일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8.21/뉴스1
오강섭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21일 강북삼성병원에서 진행된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연이어 터지는 흉악범죄들의 정신질환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금 터져나오는 문제들은 중증 정신질환자들의 관리가 안 되고 있는 현실에서 시작된 것”이라면서 “중증 정신질환이라는 게 조현병만을 타깃으로 이야기하면 안 되지만 조현병이 특히 중증이 많고, 악화됐을 경우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신림역 흉기난동 사건을 시작으로 서현역·지하철 2호선 흉기난동 사건, 가장 최근의 신림동 등산로 성폭행 사건까지 하루가 멀다하고 잇따라 발생하는 흉악범죄에 온 나라가 공포에 떨고 있다.
중증 정신질환자들의 무차별 공격 범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과거 2019년 22명의 사상자를 낸 ‘진주 아파트 방화·흉기난동 살인 사건’을 일으킨 안인득도 조현병 환자였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가 중증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공포심과 경계심만으로 버틸 수는 없다. 오랫동안 중증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제도 마련을 주장해 온 오강섭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 이사장은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취득 후 32년째 현장에서 정신질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14명의 사상자를 낸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의 피의자 최원종이 10일 오전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경기도 성남시 수정경찰서에서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2023.8.10/뉴스1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일반 범죄자와 정신질환자의 범죄는 조금 다르게 봐야 해요. 일반 범죄자들은 본인의 사리사욕으로 어떤 목적이 있어서 나쁜 짓을 하는 건데, 정신질환자는 병에 따른 증상으로 벌이는 일이다 보니 이건 처벌보다는 치료가 우선해야 한다고 봅니다.
문제는 가족들은 중증 정신질환자들을 치료하고 관리할 여력이 없어요. 가족 중 중증 정신질환자가 있으면 그 가정은 풍비박산 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이 모든 책임과 관리를 가족에게 맡기고 있어요. ‘중증 정신질환 국가책임제’ 제도가 도입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사건이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는 거죠.
-중증 정신질환자들은 강제적이라도 격리 치료가 필요할 것 같은데.
▶2016년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되면서 보호 의무자 입원제도가 생겼어요. 중증 정신질환자들의 입원이 굉장히 까다로워졌습니다. 조현병 환자들은 자신이 병에 걸렸는지 모릅니다. 망상과 환청 등을 느끼지만 그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혼자 이상한 소리를 하며 중얼거리고 고함을 지르고 당장 무슨 일이라도 벌일 듯해도 비(非)자의 입원을 시키려면 직계가족 2명 이상이 요청하거나 정신건강복지센터를 통해 각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직계가족 2명이 없는 경우도 많을 뿐더러 정신건강복지센터가 문을 닫았을 때 올 경우에는 응급실 전전하다 그냥 집에 돌려 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입원을 시키더라도 문제입니다. 비자의 입원은 2주간 할 수 있는데, 그사이에 입원 적합성 심사를 해야 합니다. 현재 입원해 있는 병원이 아닌 곳에서 전문의가 와야 합니다. 그런데 그 전문의들도 바쁘다 보니 심사가 있을 때마다 올 수가 없어요. 심사를 받지 못하면 그 환자는 그냥 퇴원을 해야 합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왼쪽)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3.8.18/뉴스1
▶더 이상 미뤄선 안됩니다. 저희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도 계속 주장해왔던 제도입니다. 외국의 경우 정신과에 아주 지식이 있는 전담 판사를 두고 중증 정신질환자들의 입원을 결정합니다. 국가에서 나서서 중증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킨다는 데 대해 환자의 인권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도 있지만, 환자 보호자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치료 거부가 자유가 아니라 치료가 자유다. 환자들이 치료를 받아야 자유롭게 살 수 있다”라고 말이죠.
사실 이번 일련의 사건들은 아주 드문 케이스입니다. 보통 중증 정신질환자들의 범죄 대상은 가족인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들이 보호자라고 하지만 모든 걸 감당하기엔 버거운 거죠. 국가 차원의 관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일단 복지부에선 ‘예방·조기 발견-치료 내실화-일상 복귀·퇴원 후 체계적 지원’ 등 전 주기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조속히 만들겠다고 하던데.
▶물론 조기 발견이 중요한데 정신질환이라는 게 사실 조기에 발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약간 기미를 보이는 사람을 추적해 관리하자는 측면이 있겠지만, 더 중요한 건 발병한 사람부터라도 잘 치료해야 합니다. 그다음 치료가 잘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중증 정신질환자는 가족들도 함께 살기 힘들어하다 보니 일본 같은 경우는 거주지도 제공하고 꾸준한 치료를 지원합니다.
▶조현병 환자의 10~15%는 반복 입원을 하는 중증입니다. 약 30%는 치료를 잘 받아 몇 년 안에 깨끗이 낫습니다. 나머지 50% 정도는 치료는 받지만 그런대로 사회생활을 합니다. 이 50%에 속하는 환자들 중엔 선생님도 있고 사장도 있고 심지어 의사도 있어요. 조현병에 걸렸다고 낙담할 게 아니란 말이죠. 치료와 관리만 잘 받으면 어울려 살 수 있습니다. 이분들이 치료를 잘 받는 것이 곧 일반 국민의 안전입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