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
한국에서는 매일 36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매일 92명이 자살을 시도해 응급실에 실려 갑니다. 한국은 죽고 싶은 사람이 정말 많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곳곳에는 죽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죽고 싶은 당신에게’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연재물입니다. 지친 당신이 어디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도 함께 담겠습니다. 죽고 싶은 당신도 외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제 살 만큼 살았지, 늙으면 죽어야지’ 하는 어르신들 말씀을 흔히 3대 거짓말 중 하나라고 하죠? 물론 별 뜻 없이 하는 말씀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농담이겠거니’ 하고 넘겨서는 안 됩니다. 부쩍 이런 말씀을 자주 하는 분들을 포함해서 ‘자살 위험 신호’를 보이는 어르신에게는 직접적으로 물어보셔야 합니다. ‘어르신, 혹시 자살을 생각하고 계시는가요?’라고요.”
12년째 자살 예방 강의와 상담을 하고 있는 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정 센터장은 “어르신들이 지나가듯이 하는 말 한마디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가까운 사람을 잃은 이후에 뒤늦게 후회하는 이들을 그동안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2012년 센터를 만든 이후 그는 전국을 돌면서 삶의 의지를 잃은 사람들을 수없이 만났다. 그중에는 노인들도 많았다. 죽음을 고민하는 노인들은 다른 연령대와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었다. 2일 서울 광진구에서 그를 만나 ‘죽고 싶어 하는 어르신’들에 관해 물었다.
● 뒤늦게 후회 않으려면 ‘자살 징후’ 포착해야
‘그게 그런 뜻이었구나….’정 센터장은 자살자의 유족에게 많이 들었던 말로 이 말을 꼽았다. 고인의 말과 행동을 그냥 흘려보냈다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그것이 고인의 속내를 드러낸 언행이었다는 걸 깨닫는 경우가 참 많았다.
“한 할아버지는 자살을 결심하기 전에 큰아들에게 전화해서 ‘TV 아래 서랍장에 비상금 통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연필로 적어둔 숫자가 비밀번호라고, 얼마 안 되지만 잘 쓰라는 말도 하셨죠. 아들은 ‘뭘 비상금 통장까지 주시냐’고 했을 뿐, 그게 할아버지의 마지막 주변 정리라는 건 전혀 몰랐죠.” 정 센터장이 이어 말했다.
“갑자기 딸에게 ‘꼭 건강하고 행복해야 한다’는 말을 남긴 한 할머니도 마찬가지였어요. 그게 엄마의 마지막 인사라는 걸 딸은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서야 알았습니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하고 중요한 것을 남에게 주는 등 주변 정리를 하는 건 모두 전문가들이 말하는 ‘자살 위험 신호’다. 실제로 다수의 연구 결과를 보면 자살할 의도가 있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여러 단서를 준다. 즉, 자살은 갑자기 일어나는 예측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주변에서 자살 위험 신호를 면밀하게 포착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다.
“노인의 우울증은 청년이나 중년과 약간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절망감과 무망감, 좌절감이 좀 더 복합적으로 나타납니다. 나이가 들수록 죽음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걸 알기에 더 힘들고 노인성 질환도 생기다 보니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 많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정 센터장은 위험 신호를 보이는 이들에게 ‘자살을 생각하고 있느냐’고 꼭 물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직접적으로 질문해서 그 사람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다만 상대방이 당황하지 않게끔 차분한 어조로 말하면서 자살이라는 행위 자체를 부정적으로 표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이 2일 서울 광진구에서 인터뷰를 하며 밝게 웃고 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눈도 마주치지 않던 어르신들의 변화
정 센터장은 올해 4월부터 3개월 동안 서울의 한 복지관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집단상담을 진행했다. 대부분 외로움과 고독감을 호소하고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홀몸노인들이었다. 처음에는 ‘자기소개를 해보자’는 정 센터장의 말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면서 눈도 잘 마주치지 않던 이들이었다.그다음으로는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인정하고 조금이나마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했다.
“지금 당장 경제적으로 몹시 어려운 사람이 별안간 부자가 될 수는 없겠죠. 몸이 많이 아픈데 갑자기 내일부터 병이 다 나아 건강해질 수도 없고요. 그건 인정해야 합니다. 다만 그래도 내가 뭘 하면 좀 더 즐겁고 행복해질 수 있을지 하나씩 종이에 적어보는 거죠.”
한 할머니는 이 자리에 모인 이들끼리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을 만들어서 서로 이야기를 하면 외롭지 않을 것 같다고 적었다. 또 다른 할아버지는 나가서 조금씩 공원을 걸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게이트볼을 쳐보고 싶다고 한 할아버지도 있었다.
“다음 상담 시간에 만나면 ‘지난주에 정말 나가서 공원을 걸어보셨어요?’하고 물어보고 잘하셨다고 격려도 해드렸습니다. 처음에 저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던 분들이 먼저 말을 걸고, ‘오늘 예쁜 모자를 쓰고 왔다’면서 웃기도 하셨고요. 오랫동안 묵혀둔 어두운 감정을 털어놓는 경험이 가져온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 흙탕물 같은 인생, 샘물로 바꾸려면
정 센터장은 사실 직업군인이었다. 자살 예방의 길을 걷게 된 건 15년 전 여름, 옆 부대에서 한 병사가 자살한 이후부터다. “내 아들 살려내라”며 실신 직전까지 오열하는 병사 어머니의 모습을 정 센터장은 잊지 못했다.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해 상담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전문 상담사 자격을 취득했다. 24년 동안의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자살 예방 강의와 상담에 나섰다. 현재는 우석대 군상담심리학과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 “하루하루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만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인정해줘야 합니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자신이 처한 상황 자체가 충분히 죽을 만한 이유가 됩니다. 자신의 상황이 흙탕물처럼 느껴지고 그걸 절대 맑은 샘물로 바꿀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질 테니까요. 실제로 흙탕물을 샘물로 단번에 바꿀 순 없죠.”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하지만 흙탕물에 맑은 물을 조금씩 넣으면 언젠가는 그 흙탕물도 맑아질 수 있습니다. 저 같은 전문가가, 또 그 사람의 옆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어요. 그러니까 ‘그래도 살아보자’고, 저는 이 말을 꼭 하고 싶네요.”
자살 예방 Q&A
내 가족, 친구, 이웃이 ‘죽고 싶어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의 자문을 받아 자살 예방과 관련된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드립니다.
Q. 주변에 자살자의 유족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제가 어떤 말을 건네면 좋을까요?
A. 네, 자살 유족은 일반인보다 18배 더 우울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을 정도로 정서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황이기 때문에 주변의 섬세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아래는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자살 유족에게 위로가 되는 말’ 1~5위입니다. 이 말들을 참고해주세요.
1위 많이 힘들었겠다
2위 네 잘못이 아니야
3위 힘 들면 실컷 울어도 돼
4위 고인도 네가 잘 지내기를 바랄 거야
5위 무슨 말을 한들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 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애플리케이션(앱) ‘다 들어줄 개’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죽고 싶은 당신에게’ 시리즈의 다른 기사들은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donga.com/news/Series/70030000000942
김소영 기자 k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