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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가 부끄럽지 않아요”[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309〉

입력 | 2023-08-22 23:45:00


딸이 “양공주”라는 말을 입에 올리자 어머니는 “그건 나쁜 말”이라고 한다. 딸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런 식으로 쓰여 온 건 알지만, 내가 글쓰기를 통해 그 의미를 바꾸려고 해요.” 고통스러운 대화다. 어머니는 미국으로 건너오기 전에 “양공주”였고 딸은 그러한 삶에서 태어난 혼혈아였다. 어머니는 미국으로 오면서 그 말을 묻으려고 했는데 딸은 대학원까지 들어가서 그 말을 파내고 있다. 어머니는 그것을 얼룩이라고 생각하고, 사회학자인 딸은 그것을 얼룩이 아니라 시대와 전쟁과 국가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딸이 그 문제에 집착하기 시작한 것은 어머니가 그런 여성이었다는 얘기를 이십대 초반에 들었을 때부터다. 부모의 교육열 덕에 브라운대와 하버드대를 나온 그녀는 덜 보수적인 뉴욕시립대 대학원에 들어가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조명하는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일에 착수했다. “양공주”라는 과거에 결국 조현병까지 얻은 어머니의 트라우마를 이해하기 위한 7년에 걸친 작업이었다. 어머니의 삶이 지적 탐색의 주제가 된 것이다.

그녀가 “양공주”라는 말을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꺼낸 것은 학위논문을 마치고 그것을 책으로 내기 위해서였다. 어머니가 싫다고 하면 책으로 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양공주라는 말에 거부감을 보이면서도 반대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조금도 부끄럽지 않아요”라는 딸의 말에 불안감을 떨쳐냈는지 모른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한인 디아스포라의 출몰’이다.

뉴욕시립대 교수인 사회학자 그레이스 M 조가 전미도서상 후보였던 ‘전쟁 같은 맛’에서 털어놓은 가정사 얘기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한 ‘전쟁 같은 맛’은 “양공주”라는 말의 의미를 성공적으로 바꿔놓는다. 그러면서 그것은 그녀의 어머니만이 아니라 그러한 삶을 살아야 했던 한국 여성들, 우리 사회가 보듬지 않고 괄시하고 모욕하고 내치기만 했던 여성들에 대한 뒤늦은 애도가 된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