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서울 올림픽공원 내 키즈카페에 놀러 간 다섯 살 아이는 엄마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새 밖으로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100명이 넘는 인력을 동원해 수색에 나섰지만 카페 근처에 폐쇄회로(CC)TV가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아이는 다음 날 인근 호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CCTV가 있었다면 아이의 행방을 빨리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2016년 9월 벌어진 안타까운 일이다.
▷이 사건 이후 국회는 도시공원 내 범죄나 안전사고 우려가 있는 지점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도록 도시공원법을 개정했다. 그런데 시행령이나 규칙에 설치 간격이나 장소 등 구체적인 기준이 없고, 설치하지 않았을 때 벌칙 조항도 없다. 유명무실한 법조문이 돼 버린 것이다. 이렇다 보니 최근 여교사 폭행 살인 사건이 발생한 관악산생태공원은 축구장 10개 넓이에 CCTV가 7대뿐이고, 인근 독산자연공원에는 광화문광장 2.5배 면적에 1대만 있다. CCTV를 설치했다는 시늉만 낸 수준이다.
▷범죄는 범인의 성향, 처벌의 강도, 범행 장소의 환경 등 다양한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 이 중 환경 개선에 초점을 맞춰 범죄를 억제하는 기법을 ‘범죄예방 환경설계(CPTED)’라고 부른다. CCTV 설치는 범행 의지를 꺾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CPTED의 중요한 요소다. 실제로 경찰청이 분석해보니 CCTV가 있는 곳 근처에서는 야간에 강도 절도 등 5대 범죄가 11% 정도 감소했다. 이번 사건 범인도 “CCTV가 없는 걸 알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CCTV가 더 촘촘하게 설치돼 있었다면 범행을 포기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우려들을 감안하더라도 최소한 도시공원처럼 치안 확보가 필수적인 곳에 CCTV를 확대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의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7%가 ‘도시공원에 CCTV를 추가 설치해야 한다’고 답했다. 흉악범죄가 일어난 뒤에야 늘리겠다고 부산을 떨 게 아니라 법률이나 시행령을 고쳐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일상에 지친 시민들이 안전하게 쉬어야 할 공원이 불안과 공포의 공간으로 바뀌는 일은 막아야겠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