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카라바조의 그림은 장식이 아닌 진실 그 자체였죠”

입력 | 2023-08-23 03:00:00

‘불멸의 화가 카라바조’ 펴낸
고종희 한양여대 명예교수
‘누추한 것도 세상 일부’ 진실 밝혀… 맨발의 청빈한 종교 인물들 그려
개신교 추구했던 시대정신과 부합




“카라바조에게 그림은 장식이 아닌 진실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정물화를 그리며 과일의 썩어가는 단면과 시든 이파리까지 담아냈습니다. 싱그럽고 아름다운 순간뿐 아니라 썩어가며 누추해지는 과정까지 세상의 일부라는 진실을 밝힌 것이죠.”

카라바조의 ‘다윗과 골리앗’(1609∼1610년). 카라바조는 생전 자화상을 남기지 않았으나, 이 작품에서 목이 잘린 골리앗의 얼굴을 자신처럼 묘사했다. 한길사 제공

‘바로크 미술의 창시자’로 불리는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1571∼1610)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담은 책 ‘불멸의 화가 카라바조’(한길사)를 출간한 고종희 한양여대 산업디자인과 명예교수(62)는 22일 서울 중구 복합문화공간 순화동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40년 전 이탈리아 피사대 미술사학과에 입학한 후 카라바조에게 매료된 고 교수는 이후 밀라노와 로마, 나폴리 등을 다니며 카라바조의 발자취를 좇았다. 그는 “시대를 풍미했던 거장이 지나간 곳에는 흔적이 남기 마련”이라며 “그 흔적을 따라가며 카라바조와 영향을 주고받은 사람과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고 했다.

‘불멸의 화가 카라바조’를 펴낸 고종희 한양여대 산업디자인과 명예교수는 22일 “카라바조의 그림 속 인물들에게선 지위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존엄성이 느껴진다”고 했다. 한길사 제공

고 교수는 카라바조가 추구했던 진실성이 당대 세상과 조응했다고 봤다. 당시는 마르틴 루터(1483∼1546) 등이 종교 개혁을 한 직후였다. 화려하면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선호했던 로마 교황청과 달리 개신교는 청빈함을 추구했다. 고 교수는 “카라바조가 그린 종교 인물들은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이라며 “꾸밈없는 진실한 인간 세상을 그린 카라바조의 작품이 개신교가 추구하는 시대정신과 맞아떨어졌기에 한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고 설명했다.

책은 카라바조와 영향을 주고받은 예술가의 관계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바로크 시대 플랑드르의 화가 루벤스(1577∼1640)가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다. 고 교수는 이들의 접점을 삶에서도 찾아냈다. 1605년 루벤스의 친형이 당대 카라바조의 후원자였던 보르메오 가문의 대주교와 인연을 맺게 되면서 루벤스와 카라바조가 같은 이에게 후원을 받는 기간이 있었다는 것. 이 기간 루벤스가 카라바조의 작품 ‘그리스도의 매장’(1602∼1604년)을 접하고 구도 등이 비슷한 동명의 작품(1612년)을 그렸다고 분석했다.

고 교수는 카라바조의 대표작 중 하나로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을 꼽았다. 그는 “당대엔 가만히 손을 모으고 있는 인물화가 주종이었는데, 얼굴을 찡그리는 찰나의 순간도 작품의 소재가 될 수 있으며 화들짝 놀라는 손짓으로도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음을 증명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 그림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0월 9일까지 열리는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에서 만날 수 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