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으면 없던 일이 된다던데요.”
지난달 13일 서울 강남구에서 만난 오토바이 배달 기사 조모 씨(26)는 “불법 주정차로 신고당해 경찰서에서 사실확인요청서가 날아왔는데 주변에 조언을 구해 들은 얘기”라며 이렇게 말했다. 조 씨는 “오히려 경찰서에 출석하면 교통법규위반으로 범칙금을 내야 한다고 하는데 진짜 맞는 얘기냐”고 되물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배달 문화가 확산된 가운데 오토바이 등 이륜차 주정차 위반 신고가 4년 만에 24배나 폭증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이륜차 주정차 위반은 과태료가 아닌 범칙금만 부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자동차는 이번 달부터 1분만 주정차 위반을 하더라도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처벌 규정이 강화됐다. 하지만 여전히 오토바이 등 이륜차에 대한 처벌 규정은 바뀌지 않아 행정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6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한 인도에 오토바이 3대가 줄지어 주차되어 있다. 이륜차를 인도에 주차하는 것은 도로교통법상 불법이지만 범칙금만 부과할 수 있다. 최미송 기자 cms@donga.com
● 이륜차 불법 주정차 신고, 4년 만에 24배 증가
서울 중랑구의 한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 배달 전문기사로 활동하는 장모 씨(33)도 “집으로 주차 위반했다는 종이(교통법규위반 사실확인요청서)가 하루가 멀다고 날아온다”며 “직접 운전자가 출석해야 부과하는 범칙금인 걸 알아서 경찰서에 출석 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교통 경찰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온라인 신고는 급증하는데 이를 처리할 방법이 사실상 없어 “왜 내가 신고한 걸 처리해주지 않느냐”는 민원까지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유튜브를 운영하며 2년 동안 8000건의 이륜차 불법 교통 행위를 신고해왔다는 김모 씨(35)는 “2년 전만 해도 제보 처리 결과에 대한 답변이 빠르게 돌아왔는데 요즘은 한 달 가까이 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 “공용주차장 이륜차 주차 허용 등 제도 정비해야”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현실적으로 주차할 공간이 마땅치 않다”고 항변한다. 이미 2012년부터 법적으로 이륜차를 일반 주차장에 주차하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아직도 주차 공간 부족 등을 이유로 이륜차 주차를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한 게 현실이다.
중랑구 신내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강모 씨(39)는 “일반 자동차도 주차할 곳이 없는 상황이라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오토바이를 보면 달갑진 않다”고 말했다.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주차 공간에 세워두면 주민 민원에 시달리다보니 어쩔 수 없이 인도 등에 세우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자 지자체들은 앞다퉈 관련 대책을 내놓고 있다. 경기 용인시는 올 6월부터 공용주차장에 ‘이륜차 전용’ 주차 공간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부산에서도 4월 ‘이륜차 전용 주차구역 설치 조례안’이 부산시의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전문가들은 “오토바이가 주차장을 이용하는 걸 허용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고 했다. 법무법인 L&L 소속 정경일 변호사는 “법적으로 일반 승용차를 위한 주차장도 이륜차가 주정차할 수 있도록 허용되는 곳”이라며 “주차장을 함께 쓰는 주민들도 무조건 배척만 할 게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미송 기자 cm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