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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재판 지연, 히드라 같다’던 이균용…“獨-日처럼 신속재판 입법 필요”

입력 | 2023-08-24 03:00:00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
‘김명수 사법부’서 재판 지연 심화… 1년 넘게 선고 안된 사건 12만건
獨 ‘한달 지연마다 100유로’ 보상
日 '장기화 원인 조사' 2년마다 공표



17대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이균용 후보자가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방문해 관용차에서 내리고 있다. 이 후보자가 관용차를 탄 것을 두고 김명수 대법원장이 6년 전 후보자 지명 다음 날 강원 춘천시에서 대법원까지 대중교통으로 이동해 ‘전시성 행보’란 비판을 받았던 걸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61·사법연수원 16기)가 김명수 대법원장(64·15기) 체제에서 심각해진 ‘재판 지연’ 문제에 대해 독일이나 일본처럼 신속한 재판을 보장하는 법률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는 뜻을 주변에 밝혀 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법원장은 2017년 취임 후 이른바 ‘사법 민주화’를 내걸고 법원행정처 역할 축소, 수직서열 문화 해소 등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유능한 법관들이 법원을 떠나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웰빙 판사’가 늘면서 재판 지연이 심각해졌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를 두고 심각성을 여러 차례 주변에 강조해 온 이 후보자가 국회 임명 동의를 거쳐 대법원장에 임명되면 관련 법 제정 등 재판 지연 방지 방안을 다각도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 이균용 “신속 재판 입법 필요” 소신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대법원장 지명 전부터 가까운 법조인 등에게 “재판 지연 문제는 머리가 여러 개 달린 괴물 ‘히드라’와 같다. 문제의 원인이 복합적인 만큼 다각적으로 해소할 필요가 있다”면서 “독일, 일본처럼 신속한 재판을 위한 법률 제정 등 입법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소신을 밝혀 왔다고 한다. 웰빙 판사 논란에 대해서도 “좋은 재판을 위한 워라밸이지 워라밸만 따로 생각하는 조직에는 미래가 없다. ‘기능체’가 ‘공동체’가 되는 순간 망한다”는 지론을 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경우 헌법 27조 3항에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규정이 있다. 또 민사소송법은 “판결은 소송이 제기된 날부터 5개월 이내에 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하지만 민사소송법 해당 조항은 1999년 헌법재판소로부터 강제성 없는 ‘훈시 규정’이란 판단을 받았다. 이 때문에 재판 현장에서 이 조항이 지켜지는 경우도 거의 없다. 과거에는 법원장이 재판을 늦게 진행하는 판사들에게 주의를 주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이유로 그런 문화도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재판 지연이 누적되면서 2021년 기준으로 전국 법원에 접수 후 1년 넘게 선고가 안 나는 미제 사건은 민사 9만8879건, 형사 1만8920건으로 총 11만7799건에 달한다. 또 2014년 조사 당시 접수부터 선고까지 평균 252.3일이 걸리던 민사합의부 1심 처리 기간은 2021년 364.1일로 7년 만에 110일 넘게 늘었다.

한 법원 관계자는 “판사들이 매달 판결문을 주 3건씩, 3주 동안 총 9건을 작성하고 마지막 한 주는 쉬어가는 이른바 ‘3·3·3 캡’ 등 ‘웰빙 문화’까지 더해지면서 재판 지연이 만성화되고 있다”고 했다.

● 獨, 日은 법으로 재판 지연 방지

이 후보자가 사례로 든 독일은 심각해지는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1년 ‘재판지연보상법’을 만들었다. 장기간 진행되는 재판으로 불이익을 본 국민에게 재판이 1개월 지연될 때마다 정부가 100유로(약 14만5000원)를 보상하는 방식이다. 재판 지연이 발생한 법원의 상급 법원은 소송 절차가 얼마나 복잡했는지, 소송 참가자들이 얼마나 성실하게 임했는지 등을 따져 손실보상 범위를 판단한다. 실제로 5년 6개월 걸린 유족연금 청구 재판에서 2년 6개월에 대해 손실 보상이 인정된 사례도 있다.

일본 역시 장기 미제사건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2003년 ‘재판 신속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사건 처리 절차에 필요한 기간, 사건 처리 장기화 원인 등에 대한 조사 분석 검증 등을 실시하고 결과를 2년마다 공표하며 신속 재판을 유도한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재판 지연 관련 법을 만들고 손해배상을 하게 하거나 관리를 강화하며 법관들의 성실한 재판 진행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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