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용병그룹 바그너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 텔레그램 캡처
러시아 당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돕던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3일(현지시간) 전용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고 확인했다.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 항공 당국은 이날 러시아 서부 트베리 지역에서 바그너그룹 전용기가 추락한 사고와 관련해 “프리고진과 드미트리 우트킨이 해당 비행기에 탑승했다”고 밝혔다.
앞서 재난 당국은 초기 조사 결과 승무원 3명을 포함해 탑승자 10명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프리고진과 함께 이번 사고로 숨진 드미트리 우트킨은 프리고진의 최측근으로서 프리고진과 함께 바그너그룹을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리고진의 죽음을 초래한 비행기 추락사고의 원인은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서방에서는 그의 죽음에 어떤 형태로든 푸틴이 연루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된다.
‘푸틴의 요리사’로 불렸던 프리고진은 푸틴 대통령과 같은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이다. 청소년 시절에는 절도와 강도, 사기 등 혐의로 교도소를 들락거렸고, 1981년 강도, 폭행 등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9년을 복역했다.
출소이후 가족들과 같이 노점에서 핫도그 장사를 시작한 그는 장사가 잘되면서 돈을 많이 벌게 됐다. 이 과정에서 푸틴 대통령이 프리고진의 식당을 즐겨 찾으면서 가까워졌다.
이후 그는 여론 조작 기관을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기관은 지난 2016년 미국 대선 때 영향력을 행사해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2014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을 설립하면서 프리고진은 본격적으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악명을 떨치기 시작했다.
바그너 그룹 용병들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분쟁에 투입돼 전투 작전을 펼쳤고, 시리아, 리비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말리, 수단 등의 국가의 내전에도 개입했다. 이 과정에서 용병들이 사람들을 잔인하게 고문하는 모습이 온라인상에 드러나기도 했다.
바그너 그룹은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돈바스 지역에 배치되는 등 최전선에 전투를 벌였다. 우크라이나 동부 최대 격전지인 바후무트를 러시아가 장악하는 데도 바그너그룹의 도움이 컸다.
이를 진압하기 위해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은 6월 10일 모든 비정규군에 국방부와 정식 계약을 체결하도록 지시했으나,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킨 꼴이 됐다. 재계약을 거부한 프리고진은 이후 6월 23일 무장반란을 일으키며 러시아 본토로 진격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를 반역 행위로 규정하고 “가혹한 대응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장반란을 일으켜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로 향하던 바그너 그룹은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로 반란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바그너 그룹이 벨라루스로 철수하기로 해 반란은 36시간 만에 마무리됐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리더십에 큰 타격을 줬다.
철군 조건으로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신변 보장 약속을 받아낸 프리고진은 무장반란 닷새 뒤 푸틴과 만나 면담했고, 7월 말에는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담이 열린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푸틴이 결국에는 프리고진을 제거할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았다. 푸틴이 그간 정적과 배신자들을 제거하며 권력을 공고히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7월 5일 러시아 국영 로시야1 방송은 경찰 특수부대가 프리고진 소유 사업체의 사무실과 저택을 급습하는 장면을 방영한 뒤 프리고진에 대한 수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결국 앞서 푸틴과 갈등을 빚은 반대자들과 마찬가지로 프리고진 역시 수사와 재판을 통해 단죄받기 전에 사망했다.
송치훈 동아닷컴 기자 sch5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