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앞바다에서 조업을 마친 어선들이 남동구 소래포구 나루터에 돌아오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소래포구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이 일대에 염전이 들어서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제는 소래와 군자, 남동 등 염전지대에서 생산된 천일염(天日鹽)을 인천항을 통해 수탈하기 위해 1937년 수인선(水仁線·수원∼인천) 철도를 놓는다. 이때 소래포구에 소금을 실어 나르던 돛단배들이 즐비하게 늘어서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6·25전쟁이 끝난 뒤에는 황해도 등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 소래포구에 대거 몰려들었다. 1974년 인천항(내항)이 준공된 뒤 새우잡이 소형 어선들이 소래포구로 정박 장소를 옮기자 새우 파시로 발전하면서 수도권의 대표적인 재래 어항으로 바뀌었다. 탁 트인 갯벌 위에 놓인 수인선 철로를 달리던 협궤열차와 소래철교도 소래포구의 명성을 알리는 데 한몫했다.
지난해 열린 소래포구축제를 찾은 관광객들이 공연을 즐기고 있다. 남동구청 제공
소래포구 어촌계와 전통어시장상인회 등은 결국 6월 자정대회를 열고 바꿔치기는 물론 바가지요금과 섞어팔기 행위 등을 근절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최근 상인회는 자체적인 단속을 펼쳐 상거래 질서를 위반한 점포 6곳에 대해 상벌규정에 따라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고 한다. 하지만 한번 돌아선 관광객의 발길을 돌리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소래포구에서 30년 넘게 조개구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일선 씨(54)는 “바꿔치기 논란 이후로 손님이 거의 끊겨 금~일요일에만 식당 문을 여는데 하루 매상이 10만 원을 밑돌 때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상인들은 “일부 상인의 잘못으로 전체가 매도된 측면이 있다”며 비난을 멈춰 줄 것을 호소하고 있으나 과거에도 소래포구의 이미지가 달라질 기회는 있었다. 2017년 3월 소래포구 어시장에 큰 불이 나 현대화사업을 거쳐 2020년 3년 9개월 만에 다시 문을 열 당시에도 상인들은 불량 수산물 판매, 바가지요금, 중량 눈속임 등을 근절하겠다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각종 민원을 처리하는 소비자신고센터도 설치했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일부 상인들의 행위는 계속돼 왔다.
황금천 기자